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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3. 2021

사람이 제일 무섭다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영국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있었고 독일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영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그들은 서로 구별이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

더군다나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한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1,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영국 사람들은 독일군에 의해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아냐고 할 것이다.

반면에 독일 사람들은 영국군에 의해서 자신의 가족은 또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 아냐고 할 것이다.

이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나빠 보이고 저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나빠 보인다.

전쟁 상황에서는 우리 편은 살려야 하고 저쪽 편은 죽여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 편에서는 잘했다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나빴다고 한다.




전쟁 무기의 발명과 발전을 보면 그런 논리는 더욱 두드러진다.

상대방의 칼과 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우리 편을 지키려고 소총과 대포를 만들었다.

다가오는 적군을 먼 거리에서 무찌르기 위해서이다.

소총과 대포가 전장에 나오니까 서로 근접전을 벌일 수가 없었다.

참호 속에 숨어서 적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상대방을 섬멸시키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참호와 소총 세례로부터 우리 편 군인들을 보호해야 할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탱크였다.

물탱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탱크(Tank)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니까 탱크도 인간과 비슷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물탱크는 사람을 살리는 소중한 물건인데 전쟁 탱크는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물건이다.

‘탱크’라고 불렀기에 적군은 그것이 물탱크를 말하는 줄 알아서 경계를 소홀히 했다.

그런데 그것이 가공할만한 무기였던 것이다.




내 부모님은 유년시절에 제주도 4.3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몸소 겪으셨다.

아버지는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에서 사셨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와서 사람들을 잡아갔다.

경찰들이 지나간 다음에는 한밤중에 공산주의자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낮에는 경찰들을 피해서 한라산 숲속에 숨고 밤에는 공산주의자들을 피해서 아랫마을로 도망 다니셨다.

경찰들은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라 불렀고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 증거로 빨갱이의 코와 귀를 베어가야만 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일이 자행되었다.

그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바닷가마을이어서 안전하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큰아버지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잡혀서 산 채로 땅에 묻히셨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48년에 있었던 일이다.




북쪽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너무 웃긴 말이다.

이성계는 북쪽에서 내려와서 조선을 세웠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개성이 고향이니 북쪽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 정착한 인류는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북쪽 사람이 무섭다는 말 속에는 우리 자신도 무섭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무서운 거다.

사람 안에 무서운 것이 도사리고 있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다.

만약 짐승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자기들 편을 들어주는 인간을 만날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나도 나 자신이 무서울 때가 많다.

내 안에 무서운 하이드가 숨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지킬 박사처럼 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괴물 같은 하이드가 된다.

그냥 모든 사람을 좋아해버리면 되는데, 

모두 다 우리 편으로 만들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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