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un 05. 2021

왕고집이신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머니와 몇 주째 전화로 실랑이다.

백신 맞아야 되지 않으시겠냐고, 안 맞겠다고.

이유가 뭐냐고, 체력이 약해서 걱정된다고.

그러면 집에만 계시고 절대로 어디 가지 마시라고, 알았다고.

그런데 교회도 가시고 병원도 가시잖냐고, 그건 괜찮다고.

이건 뭐, 세상에서 제일 고집 센 어머니이시니 어떻게 말릴 도리가 없다.

강씨 고집이 강하고 최씨 고집이 세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박씨 고집이 제일 빡세다고 하셨다.

그런 박씨 가문에 눌러앉으신 것을 보면 이씨 고집이 이긴 거다.

이씨 고집이 제일이다.


자식 이길 부모 있냐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를 이길 자식은 없다.

줄줄이 6남매를 두셨는데 우리 6남매가 힘을 합쳐도 어머니를 감당 못한다.

그런 점에서는 모시고 사는 큰누나가 제일 고생한다.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갑게 대하시지만 같이 있는 자식에게는 엄청 고집을 피우실 게 뻔하다.




내 주변에도 백신 안 맞으시겠다던 어르신들이 많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데, 백신도 공짜인데 왜 그러실까?

이유는 못 믿겠다는 거다.

그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믿고 백신은 못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들 때문이다.

“백신 맞은 사람 중에 누가 더 안 좋아졌더라,

맞고 나서 누가 죽었더라.

그거 맞으면 당신도 죽을 수 있다.

백신이 바이러스 잡는 게 아니라 사람 잡는다.”

이런 소문들이다.


실상을 파헤치면 소문이 사람 잡는다.

이성적으로 대할 것은 이성적으로 대하고 신앙적으로 대할 것은 신앙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이성적으로 대해야 할 것을 무슨 신앙처럼 대한다.

믿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니까 믿겠다는 거다.

꼭 그런 사람이 나중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한다.

이럴 때는 사람을 믿을 게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와 결과를 믿어야 한다.




1350년경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번져나갔을 때 사람들은 페스트균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 중의 상당수는 유태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을 믿었다.

혹은 마을에 몰래 들어온 마녀가 그랬다고 했다.

그 소문의 결과는 유태인 대학살 및 마녀사냥으로 이어졌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첫 부분은 1894년 동학혁명 이후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일본 군인들이 물밀듯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조선 사람들은 겪어보지도 못한 전염병이 나돌았다.

동네마다 줄초상이 났다.

주인공 최서희의 할머니도 그때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그 질병이 신령님을 노하게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믿었는지 마을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굿을 했다.

결과는 전염병이 삽시간에 더 넓게 퍼졌다.

거리두기를 하고 물을 끓여 마시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 막을 수 있었던 콜레라 전염병이었다.

무지가 불러온 끔찍한 일들이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안 하겠다고 예약 취소를 하니까 이번에는 맞고 싶은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투약하는 정책이 나왔다.

그러자 일주일 사이에 세상이 요동을 쳤다.

이번에는 너도나도 백신을 맞겠다고 아우성이다.

역시 선착순의 위력은 강하다.


뭐든지 선착순을 외치면 사람들은 기를 쓰고 달린다.

2001아울렛 할인행사 같은 거 할 때면 문 열자마자 뛰어가는 사람들 많다.

냄비 하나 받고 좋아라 한다.

집에도 많이 있으면서 말이다.

몇 개 안 남았다고 하면 정말 미친 듯이 달린다.

남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오늘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보려고 한다.

평상시에는 어머니가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하늘을 원망하셨다.

무슨 기도냐고 여쭤보면

“빨리 데려가달라고 하는데 안 들어주신다.”

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백신 주사가 무섭다고 하신다.

왜냐고?

빨리 데려갈까 봐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제일 무섭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