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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7. 2021

무식한 게 열받아서 책을 왕창 빌려버렸다


요 며칠 읽는 책마다 연달아서 서기 100년 어간에 살았던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후기 스토아학파에 속하는 에픽테토스(Epictetus)이다.

프리지아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니까 지금의 터키 중부 지방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노예였다고 했으니까 아마 그의 조상들이 로마에 저항하다가 패배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로마로 끌려와 노예생활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주인도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스토아 철학자인 무소니우스 루프스를 만나 그에게서 스토아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자유민이 되었을 때는 로마에서 철학 강의를 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를 친구처럼 가까이 대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의 저서 <명상록>에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첨부하기도 하였다.

노예로 시작해서 황제의 친구까지 된 드라마틱한 인물이었다.




철학에 깊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스토아학파에 대해서는 얼추 알고 있었지만 에픽테투스라는 인물은 생소했다.

나의 무식함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열받았다.

인류 역사 속에 걸출한 철학자들이 많고 많은데 이런 생소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들이 좀 얄미웠다.

그래서 대충 저울추를 맞춰보기로 했다.


일단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정보와 일화와 명언들을 살펴보았다.

오! 간단하게 생각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그에 관한 책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내가 가입한 전자도서관들을 뒤져보았다.

경기도전자도서관, 성남시전자도서관, 알라딘전자도서관, 예스24전자도서관, 교보문고전자도서관, 그리고 대학교 전자도서관까지 싹 훑었는데 책이 달랑 1권 있었다.

그것도 대출 중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절차로 종이책을 살폈다.

하하. 우리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에 에픽테토스의 책 5권이 있었다.




설마 누가 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래도 철학책이니까 좀 두껍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에코백도 하나 들고 갔다.

성남시 관내 도서관에서는 1인당 6권까지 책을 빌릴 수 있다.

고맙게도 책들이 비슷한 위치에 꽂혀 있었다.

더 반가운 것은 책의 두께가 얇다.

하기는 고대에는 필기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책이 얇을 수밖에.

책 다섯 권을 한 손에 쥐어도 될 정도였다.

대단한 물건을 얻은 것처럼 뿌듯해하며 집으로 왔다.


에픽테토스가 지은 책이 뭐가 있나 살펴보니 그가 직접 쓴 책은 없었다.

그의 제자가 그의 가르침을 모아서 <담화록>을 편집했고, 그중에서도 액기스만 모아서 <엥케이리디온>이란 선집을 냈다고 한다.

김재홍 교수의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이라는 자료가 있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사람 에픽테투스를 공부할 시간이다.




안 보였으면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괜히 내 눈에 보여서 이 사달이 난 거다.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열받았다.

세 명이 만난 자리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 이야기만 둘이 계속하고 있다면 열받지 않겠는가?

꼭 그런 심정이었다.

편안하게 책 한 권 읽으려 했는데 저자가 에픽테토스 이야기만 한참을 하였다.

그 책을 덮고 다른 책을 골랐는데 하필 거기서도 에픽테토스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저자 중에서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인데 둘이 짜서 나만 왕따시키는 것 같았다.

“왜 나만 모르는 사람 이야기를 하냐고?”


결국 열받아서 도서관에 있는 에픽테토스 책을 싹 빌려와버렸다.

적어도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도서관에서 에픽테토스 책을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에서 자유민이 되어 일평생 자유를 외쳤다.

이제 나는 그를 읽음으로써 무식함에서 자유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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