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un 22. 2021

배워서 남 줘야 하는 지식


경복궁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한 곳에서부터 씁쓸함이 밀려온다.

명실상부한 조선의 정궁이지만 여러 번에 걸친 화재와 난리에 불타고 훼손당한 흔적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발생한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후, 270년이 넘도록 복구조차 하지 못했다니 정궁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조선 500년 동안 임금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머문 기간이 더 길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의 화재는 선조 임금이 파천길에 나섰을 때 백성들이 몰려와서 불을 질렀다는 주장들이 있다.

임금을 비롯한 당시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분노한 백성들이 몰려갔고, 궁궐에 있는 보물과 식량을 훔쳐가려는 도둑놈들도 몰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불을 질렀을까?

혹자들은 궁궐에 보관되어 있는 노비문서를 비롯한 책자들을 없애버리려고 불을 태웠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면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일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접어든 조선 중기에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자들은 평생 천하게 살다가 갔다.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사다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그 사다리를 사용하려면 힘센 사람들이 와서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그러던 차에 난리가 난 것이다.

임금이 궁궐을 비웠다.

신하들도 떠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이끌어갈 테니 백성들은 잔말 말고 따라오라고 했었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고 계급지웠다.


상층 계급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이 계속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층 계급이 무능하고 무지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도 알아야 한다며 글을 만들어주셨건만 그들은 자신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에 책들을 숨겨놓았다.

아랫것들이 글을 알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며 글공부도 못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만 지식을 가지려고 했다.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북부의 알렉산드리아에는 아주 큰 도서관이 세워졌다.

알렉산더대왕의 신하였던 프톨레미가 그 지역을 다스리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끌어 모으려고 거대한 도서관을 지었다.

당시의 책은 양가죽을 둘둘 말아 놓은 것이었으니 보관하기도 굉장히 까다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수십만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었다.

책을 읽은 백성들은 많은 지식을 깨닫게 되었고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서기 3세기 말에 이르러 그 찬란했던 알렉산드리아가 시들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도서관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적 맹신에 사로잡힌 백성들이 신앙적 지식 이외의 다른 가르침들은 사악한 것이라며 불을 질러버렸다.

지식이 없으니 그들의 도시도 볼품없어졌다.




인류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글자의 발명이다.

글자 덕분에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내가 알게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다.

이렇게 서로 간에 지식을 전하고 받으면서 문명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받기만 하고 전하지 않는 자들이 생겨났다.

더 나아가서 이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지식을 받지 못하도록 그 앞을 가로막아버린다.

자기들이 보고나서는 재빨리 지워버린다.

“너희들은 알면 안 돼!”라며 엄포를 놓는다.

“이건 쓸모없는 지식이야!”라며 파괴해버린다.


지식은 불과 같아서 잘 나눠서 사용하면 밥도 짓고 집도 따뜻하게 하는 이로운 것이 된다.

하지만 혼자만 독차지하면 집을 태우고 세상을 폭발시켜버리는 무서운 것이 된다.

지식은 나의 것만이 아니다.

배워서 남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살고 우리도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식한 게 열받아서 책을 왕창 빌려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