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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을 자리, 앉지 말아야 할 자리

by 박은석


요즘은 어디를 가나 앉을 자리를 먼저 살핀다.

의자가 있다고 해서 냉큼 앉을 수 없다.

줄이 쳐 있기도 하고 앉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하다.

앉을 수 있는 자리에도 이렇게 앉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하기는 자리라는 게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명이 한 줄로 쪼르륵 앉을 수 있는 장의자나 벤치는 눈치껏 앉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자기 자리가 아니면 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다.

앉아서는 안 된다.

의자는 그 사람의 존재와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갤런 크렌츠는 <의자>라는 책에서 의자의 역사, 의자와 권력, 의자의 예술적 변화, 의자와 건강과의 상관관계들을 재미있게 풀어쓰기도 했다.

저자는 우리에게 아무 의자에나 앉지 말라고 한다.

앉으려면 바른 자세로 앉되 오래 앉아있지 말라고도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골라서 했다.




사람은 많은데 의자는 항상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언제든지 의자를 둘러싼 갈등이 생긴다.

남이 앉기 전에 먼저 내가 앉아야 한다.

한 번 차지한 의자에는 꾹 눌러앉아야 한다.

순간 방심해서 일어섰다가는 영영 남의 자리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의자놀이라는 놀거리도 생겼다.

의자를 차지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의자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러나는 놀이이다.

횟수를 더해갈수록 의자의 개수가 줄어들다가 최종 한 개의 의자만 남는다.

그 의자를 차지하려고 두 눈에서 불이 난다.

의자 전쟁이다.


미국의 HBO방송에서는 아예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다툼과 전쟁을 내용으로 해서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그 드라마에서도 숱한 권력자들이 의자를 차지하려고 도전했다가 사라진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탐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때로는 앉기 싫은 자리인데도 앉아야 할 때가 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지만 다시 붙들려 와 앉혀지기도 한다.

남들은 좋은 자리라고 하지만 나의 숨통을 죄어오는 자리일 수도 있다.

일어나서 자유롭게 활개치며 다니고 싶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자리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의자에 앉은 자는 그 의자의 가치를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의자가 그를 짓누를 것이다.


간혹 그 자리에 앉을만한 자격이 안 되는 사람 같은데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는 사람도 있다.

본인도 극구 사양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태종 이방원의 아들 이도(李祹)가 그랬다.

자기를 세자로 삼으면 안 된다고, 왕을 삼으면 안 된다고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양했다.

하지만 그가 앉아야만 했다.

그가 앉지 않았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그가 앉았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되었던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내가 앉을 자리가 어디이며 내가 앉으면 안 되는 자리가 어디인지 분별할 수 있다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다.

노약자를 위한 자리, 임산부를 위한 자리,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약자를 배려하는 자리이다.

평상시에는 자기가 세다고 하면서 꼭 그 자리 앞에서는 자기가 약자라고 생떼 쓰는 족속들도 있다.


등받이와 폭신한 좌판과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런 의자에 앉으면 골치 아픈 여러 일들을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

편안하게 졸고 앉아 있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잠을 자려면 침대로 갈 것이지 자리를 차지해서 앉아있으면 안 된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자신도 초라하게 보이지만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도 불편하다.

앉을 자격이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좋다.

만약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면 자릿값을 톡톡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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