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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목소리가 좋다.

by 박은석


불현듯 생각이 나서 안부인사 차 전화를 했다.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상대방도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생각이 나서 그냥 전화드렸어요. 잘 지내세요?”

그렇게 시작해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전해졌다.


늘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생각나는 건데, 갑자기 전화하고 싶어서 전화한 건데 상대방은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고 여기고 고마워한다.

갑자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화 한 통에 서로의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밝아진다.

무슨 말을 나누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냥 목소리가 반가운 거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의 목소리,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의 목소리, 나를 반겨주는 사람의 그 목소리가 좋은 거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인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고민하면서 전화 버튼을 누르다 말다 한다.

하지만 막상 통화음이 울리고 저쪽에서 “여보세요?” 혹은 “OO야!”라고 내 이름을 부르면 방금 전까지 할 말을 찾던 고민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을 수다 떨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에잇! 모르겠다.”했던 적들도 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할 말이 생각이 나서 다시 전화기를 든 적들도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작 중요한 말은 지금 너와 내가 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잘 있고,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만약 이 중의 하나라도 틀어졌다면 수없이 전화버튼을 눌러도 신호음만 갈 뿐 너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 조그만 창고 안에는 우리 부부가 쏟아놓았던 수백 통의 연애편지들이 보관되어 있다.

인터넷이 일상으로 들어오기 전, 이메일도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 시티폰을 들고 공중전화기에 안테나를 맞추던 시절보다 더 앞선 시절, 허리에 삐삐를 차고 폼 잡던 시절.

그 시절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약속이 엇갈려 마냥 기다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 들려줄 수 없었다.

편지를 통해 이삼일 후에나 들려줄 수 있었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망설이며 편지지 몇 장은 휴지통에 구겨넣기 일쑤였다.

어느 소설 속의 기가 막힌 문장도 옮겨 적고, 감칠맛 나는 시도 몇 편 적었다.

앞날에 대한 엄청난 포부도 실었고 인생과 세상을 깊이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깊은 사색의 글도 담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목소리를 들려주고 듣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별 중요한 일도 아닌데 전화했냐며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말은 사소한 말 속에 다 담겨 있다.

어떤 때는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말에 울컥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나에게 밥 먹는 그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살아가면서 정작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말들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곤충이 되어버렸다는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신을 그냥 아들로, 오빠로 대해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욕쟁이할머니의 식당을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고 싶어서이다.

어머니 말고 나에게 그런 욕을 해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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