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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8. 2021

누구는 감정이 없는 줄 아세요?


남들은 나에게 성품이 좋다고 한다.

친절하고 밝아서 좋다고 한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내 속마음은 하나도 모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본다.


거울을 보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여겨진다.

말끔하게 머리를 손질했고 깨끗한 셔츠와 재킷을 갖춰 입은 신사다.

입에서 험한 소리도 잘 하지 않는다.

가급적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를 짓고 긍정적인 말을 한다.

좀 불편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괜찮다는 시늉을 한다.

이런 나를 보며 어떤 이들은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을 우려먹기 편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나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겉은 깔끔한데 속은 시꺼멓고 음흉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맞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도 사람이다.

내 안에도 온갖 감정이 혼재되어 있다.

좋은 사람을 보면 좋고 안 좋은 사람을 보면 안 좋다.

열 받는 일을 겪으면 성질내고 슬픈 일을 당하면 울고 싶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침을 퉤퉤 뱉는 족속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상한다.

한밤중에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 욕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글을 기사랍시고 신문에 올리는 신문사와 기자를 보면 기레기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LG트윈스가 9회에 역전패를 당하면 한 시간 동안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투수에게는 왜 그렇게 던졌냐고 하고 포수에게는 왜 그런 사인을 보냈느냐고 한다.

야수들에게는 그 공도 못 잡느냐고 야단친다.

물론 혼잣말이다.

한창을 그렇게 열불내고 있는데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아주 쾌활하고 밝게 “여보세요?”하며 전화를 받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한 일인데 결과가 내 뜻만큼 따라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주눅이 든다.

친구가 좋은 소식을 보내오면 축하해주면서도 부럽고 열등감이 생긴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저 녀석들이 커서 자기들의 인생을 펼칠 때까지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아내가 병원에 간다면 그게 감기 같은 사소한 아픔이라고 해도 덜컹 겁이 난다.

물론 겉으로는 잘 다녀오라고 한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네.” 하면서 말이다.

모처럼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면 퉁퉁거리면서도 끊고 나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를 한다.


교회에서는 나에게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무척 부끄러워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바로 나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네 이놈!” 하고 야단치실 텐데 언제나 참아주셔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참아주신다는 사실을 믿고서 내가 이렇게 까불고 있나 보다.




신사적이라고?

선비 같다고?

흥이다 흥!

신사라면서 얼마나 못된 짓들을 많이 했는데?

선비라면서 음흉한 일에 얼마나 많이 끼어들었는데?

신사적이라고 해서 좋은 말도 아니고 선비 같다고 해서 존경스러운 말도 아니다.

신사도, 선비도 그 마음속에는 시커먼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인격적’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자기에게 잘해주면 인격적이고 자기에게 못되게 굴면 비인격적인가?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인격 안에는 좋은 면도 있고 추한 면도 있다.

이럴 때 이렇게 드러나고 저럴 때 저렇게 드러나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싫은 것이다.

괜히 그 사람의 인격이 좋다느니 안 좋다느니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좋으면 좋다고 하고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된다.


그러니 나를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감정이 있다.

나도 겉 다르고 속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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