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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5. 2021

내 인생은 공과 같아서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간다


나는 웬만한 공놀이는 다 좋아한다.

공놀이뿐만 아니라 노는 것은 다 좋다.

그중에서도 라켓을 가지고 공을 다루는 탁구, 테니스를 즐긴다.

소꿉친구가 탁구 선수였는데 그 친구를 이겨보려고 나 홀로 무진장 노력을 했다.

교회에 탁구대가 한 대 있었는데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변변한 놀이도 없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중학생 때는 1년에 300일은 탁구를 쳤던 것 같다.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 치고 아무도 없으면 탁구대를 벽에 붙여놓고서는 혼자서 벽치기 연습을 했다.


당구에 맛을 들이면 네모난 것은 모두 당구대로 보인다고 했던가?

탁구도 비슷하다.

탁구공을 이렇게 치면 이렇게 회전이 걸리고 저렇게 치면 저렇게 회전이 걸릴 것이라는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이쪽 귀퉁이에 서서 스카이서비스를 하면 저쪽 대각선 모서리에 공이 똑 떨어졌다.

실력이 늘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10여 년 전부터는 테니스를 치고 있다.

테니스 코트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 잡아서 한 달에 두세 번은 가는 것 같다.

탁구라켓과 테니스라켓의 공을 치는 방법은 다르지만 라켓 운동으로서의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일단 라켓 가는 곳에 몸이 먼저 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라켓 경기는 몸으로 하는 경기이고 발로 하는 경기라는 말들을 한다.


테니스 레슨을 처음 받을 때 코치는 나에게 20분만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돈은 받을 만큼 다 받으면서 고작 20분이라니.

기본적으로 레슨이라고 하면 1시간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뻔했다.

그런데 막상 레슨을 시작해서 5분을 뛰고 나니까 입에서 단내가 났다.

한 시간 했으면 나는 벌써 천국에 갔을 것이다.

20분만 가르쳐준 코치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테니스 코트는 얼마 안 되지만 선수는 그 좁은 코트를 엄청나게 뛰어다녀야 한다.




부지런히 뛰는 것이 몸에 배었으면 그다음에는 라켓을 내 팔의 연장선으로 보아야 한다.

라켓 따로 몸 따로 놀면 안 된다.

가끔 경기가 안 풀린다고 라켓을 내동댕이치는 선수들이 있는데 정말 꼴불견이다.

자기 몸을 던져버리는 비신사적 행동이다.

그들도 안다.

라켓에게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선수들은 항상 라켓을 소중히 다룬다.

테니스라켓의 줄의 강도에 따라 공의 속도가 달라진다.

탁구라켓의 러버에 따라서 공의 회전 속도가 차이 난다.

습도가 많아도 안 되고 열에 노출되어도 안 된다.

깨질세라 흠이 날세라 애지중지한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몸을 보물처럼 다루는데 라켓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라켓까지 보물처럼 다룬다.

라켓은 몸의 일부기 때문이다.

비싼 라켓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제 몸에 딱 맞는 라켓이 좋은 것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과 몸에 딱 맞는 라켓을 가졌다면 그다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야 한다.

라켓으로 공의 윗면을 올려치면 드라이브성 타구가 되고 공의 아랫면을 내려 깎으면 백회전이 걸려서 공이 가라앉는다.

라켓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려서 치면 공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나간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내가 치는 쪽으로 움직이고 내가 힘을 주는 만큼 속도와 회전이 달라진다.

공이 괜히 엉뚱한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공은 아무 감정이 없다.

내가 그쪽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는 거다.

내가 살아온 날도 꼭 라켓운동을 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가 있다면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내가 공 같은 나의 인생을 이 방향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면 지금 공 같은 내 인생을 어느 쪽으로 보내는지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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