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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7. 2021

내가 지나간 길이 세상을 더 좋게 해주길...


자고 나면 치울 게 생기고 돌아서면 쓰레기가 쌓인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일상이다.

우리 동네는 일주일에 분리배출하는 날이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이나 되는데 그때마다 종이류, 플라스틱류, 비닐과 고철류 등 서너 바구니나 나온다.

거기다가 음식물 쓰레기와 종량제봉투에 담긴 소각용 쓰레기까지 합치면...

아휴...

쓰레기 천지다.

버려도 버려도 또 나온다.


나 한 사람 이 세상에 살다 가면서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남길까?

아마 모르긴 해도 몇 톤은 될 것 같다.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아기였을 때 버린 기저귀만 해도 1톤은 되었을 것이다.

입고 버린 옷 무게만도 엄청날 테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검은 때도 차곡차곡 모으면 내 몸무게만큼 나가지 않을까?

거기다가 내가 먹고 싼 것들...

으! 더럽고 역겹지만 엄연히 내가 만든 쓰레기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다.

바로 나다.




그러면서도 누가 나에게 쓰레기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발끈한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정확히 얘기해주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지고 좋아지기를 바랐다.

성공한 인생이 꼭 큰 업적을 이루는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아닌가?


내가 살고 간 다음에 나 때문에 세상이 조금 좋아졌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거창하게 세상까지 안 가도 된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서라도 그렇게 인정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남 좋은 일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지나간 자리가 더 좋아지게 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어쩌면 불가능한 일임을 요즘에 깨닫게 되었다.

더 좋게 하기는 고사하고 세상을 더 망가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세상의 모든 물질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에너지는 상황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알려주었다.

열역학 제1법칙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뉴턴은 에너지는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이다.


그런데 에너지가 흐르는 그 방향이라는 것이 좋은 쪽에서 안 좋은 쪽으로의 방향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예쁜 사과가 있다면 그 사과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과는 썩어 문드러진다.

더 이상 예쁘지가 않게 된다.

내가 그 사과를 먹고 배에서 소화시켜 배설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한다.

에너지는 있지만 그 에너지가 흉측한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뉴턴의 열역학 제2법칙을 내 삶에 적용해 보면 딱 맞아떨어진다.

나는 에너지를 쓰고 나서 보기 싫은 모양의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뉴턴은 천재이다.

현대 문명사회는 뉴턴의 과학 발견에 기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뉴턴이 내 인생을 제대로 진단해준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도 할 말이 있다.

뉴턴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미 예견했다고 변명하면 된다.


그런데 뉴턴의 열역학 제3법칙이 남아 있다.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모두 흘러가서 더 이상 흐를 것이 없으면 그 형편없고 무질서하고 더러운 것이 새로운 모양의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쓰레기들과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몇 천, 몇 만 년이 지나면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원했던 대로 내가 지나간 길이 세상을 좋게 해주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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