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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는 시들어도 마음은 시들면 안 된다

by 박은석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냉장고에서 상추 한 봉지를 꺼내고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야채를 거의 안 먹고 아내는 돼지고기를 안 먹으니 삼겹살에 상추쌈은 오롯이 내 차지이다.

고기를 굽는 동안 상추를 씻으려고 했는데, 아이쿠야! 상추가 많이 시들었다.

하긴 상추처럼 곧 시드는 야채는 빨리빨리 먹어야 하는데 며칠 냉장고에 두었더니 풀이 죽어버린 것이다.

시든 상추를 씻으며 퍼뜩 내 마음에 메아리치는 소리가 있었다.


‘상추는 시들어도 마음은 시들면 안 된다!’


상추는 적어도 며칠 동안은 그 싱싱함을 유지한다.

그런데 내 마음은 금방 시들어버린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인 사람,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른 사람이 바로 나다.

좀 전까지 좋다고 했다가 갑자기 싫다고 하는 게 나의 마음이다.

잔뜩 칭찬했다가 뒤돌아서서 비판하는 게 나의 마음이다.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해버리는 게 나의 마음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여러 책들을 읽었다.

심리상담 기술들도 많이 살펴보았다.

역사 속에서 먼저 살다 간 인물들을 보며 본을 삼았고 반면교사를 삼기도 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두 다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은 지식으로만 다져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똑똑한 사람이 그 지식을 사용해서 못된 짓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는 양심이 있냐고 묻는 것조차 우스운 질문이 된다.

가방끈이 길다고 해서 마음의 넓이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를 따고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서 마음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오랜 시간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기에 더 빨리 마음이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햇빛도 맞고 비도 맞고 바람도 맞아야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한다.




힘든 일을 만났다고 하면서 마음을 놔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든 일을 견디면서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시드는 것은 우리가 대면하는 일 때문이 아니다.

처한 상황 때문도 아니다.

겪어왔던 과거의 아픔과 상처, 트라우마 때문도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다듬을 수 있듯이 마음은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음은 신선과도 같을 수 있다.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한때 장사익 선생의 노래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그분은 악보를 볼 줄 모른다고 했다.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만드는 분이다.

수백 번, 수천 번 부르고 부르면서 곡 하나를 완성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한 소절 부르면 그냥 눈물이 흐른다.

그 노래 한 자락에 그분의 마음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게 한국전쟁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고 싶은 생각보다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누가 봐도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람 잃고 집 잃고 먹을 것도 빼앗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인생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는 쪽을 택했다.

비록 행색은 남루해서 얻어먹고 살아도 마음만큼은 시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계 최고의 멋쟁이들이 되었는데 마음이 시들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한때의 즐거움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들.

뜻대로 안 된다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사람들.

이번 생애는 망했다며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는 사람들.

유행처럼 들불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시들어가고 있다.

고리타분한 말이겠지만 그들에게 마음을 놔버리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상추는 시들어도 마음은 시들면 안 된다!"

++ 장사익 선생의 <꽃구경> 노래를 링크해 드립니다.
https://youtu.be/4EG39eKzipc

상추는 시들어도 마음은 시들면 안 된다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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