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면서 배우고 이기면서 성장한다

by 박은석


사람 하는 일이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따라 일을 가능하게 하든지 불가능하게 하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더라도 못하는 것은 못하는 거다.

나에게 노력하면 손흥민처럼 축구를 잘할 것이라는 말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공을 잘 다루기는 불가능하다.

재능도 그렇거니와 내 나이가 몇인데!


내가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내 마음도 내가 조절하기 힘든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일의 성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요즘은 좀 덜한 것 같은데 과거에는 국가대표 축구를 할 때 꼭 들리는 멘트가 있었다.

그것도 후반전이 끝나갈 때면 아나운서나 해설자가 한마디 했다.

“지금부터는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정신력으로 이겨야 합니다.”라는 말이었다.

심판 판정이 애매하였거나 경기장의 상황이 불리했을 때도 그랬다.

무엇보다도 일본과의 경기를 할 때는 더욱 그 말을 많이 썼다.

과거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한일전은 말 그대로 전투였고 전쟁이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얼굴에서도 결연한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외치며 정신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경기에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되어야 이긴다.

축구 강국인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와 경기할 때는 정신력으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잘 안 한다.

그저 잘 버티라고 한다.

이기기 어려운 경기이기에 마음을 잘 먹으라는 거다.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약팀이 강팀을 이길 때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약팀이 아무리 정신력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강팀이 이긴다.

그때 패한 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크게 두 가지이다.

망연자실하여 하늘을 쳐다보거나 슬픔에 겨워 운동장에 드러누워 있는 선수들이 있다.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선수들이다.


반면에 승자에게 축하의 악수를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와 유니폼을 바꿔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선수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경기 자체에 만족하는 선수들이다.

어쩌면 자기들 수준으로 상대편 선수들과 경기를 했다는 것 자체를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함께 경기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은퇴할 때가 되면 안다.

선수가 가장 행복한 때는 운동장에서 뛸 때라는 사실을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은 전쟁의 반성문과 같은 글인 <징비록(懲毖錄)>을 작성했다.

다시는 그런 전쟁을 겪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원인 중의 하나로 조선 개국 이후 200년 동안 나라가 너무 평화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화로우니까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촌철살인 같은 평가였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많이 얻어터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운다.

사각의 링 위에서 얻어맞지 않으려면 도망 다니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맞지 않고는 이길 수도 없다.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어야 한다.

경기에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영원한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즌이 끝나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게임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면서 배우고 이기면서 성장한다!"

그러니까 끝날 때까지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