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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난 그 자리에서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by 박은석


숲속을 걷다 보면 분명히 두 그루의 나무인데 줄기나 가지가 붙어 있어서 한 그루처럼 보이는 나무가 있다.

그런 나무를 연리목(連理木) 혹은 연리지목(連理枝木)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이웃하고 있는 나무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다.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어가면 나무 꼭대기는 삿갓 모양의 둥그런 수관(樹冠)을 형성하는데 옆 나무의 수관과 부딪히지 않게 살짝 거리를 둔다.

공중에서 숲을 찍은 사진을 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둥글둥글한 경계선들이 그어져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많은 광합성작용을 하려고 자기 가지만 넓게 뻗치려면 옆 나무와 부딪혀서 부러질 수 있다.

잘 성장하려면 혼자만 크면 안 되고 옆 나무와 함께 커가야 한다.

혼자만 있으면 숲을 이룰 수도 없고 비바람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나무는 이런 사실을 잘도 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의 패턴이 깨질 때가 있다.

나무가 성장할 때 어떤 이유 때문인지 두 나무가 서로 맞닿을 때가 있다.

두 나무가 뻗어 나가는 방향이 우연히 반대 방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맞닿았을 때 서로 엄청 당황했을 것이다.

‘이게 아닌데, 얘는 왜 나에게로 오지?’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해서 비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려면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쟤 때문에 내가 살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 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둘은 부딪혔고 바람이 불 때마다 맞닿은 부위를 긁어서 상처를 냈다.

상대방의 가지를 꺾어버리려고 심한 몸싸움을 했는데 그럴수록 내 가지에도 생채기가 심하게 났다.

저쪽 나무가 긁힌 만큼 나도 그만큼 긁혔고 저쪽 나무의 살점이 뜯긴 만큼 내 살점도 그만큼 뜯겨나갔다.

상처투성이만 됐다.




계속 이러다간 둘 다 못 살 것 같았는지 두 나무는 악수를 한다.

바로 그 상처 난 부위를 서로의 중기와 가지로 감싸준다.

얼마나 꼭 감싸 쥐었는지 둘이 아예 붙어버린다.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두 나무인데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그랬더니 심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둘이 서로 의지하여 더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게 된다.

뿌리가 두 곳에서 지탱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더 단단해진다.


숲속에서 이런 연리목을 만나면 두 나무가 서로 맞닿은 그 아랫부분의 뻥 뚫린 공간을 한 바퀴 돌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한 바퀴 돌면 부부 금슬이 그만큼 더 좋아진다는 말들도 한다.

그래서 기왕 도는 김에 몇 바퀴 도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다른 나무이지만 하나가 된 것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지만 한 몸 한 가정을 이루어 잘살아보자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연리목은 사이좋은 부부의 이미지로 언급된다.




연리목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만큼 나와 너가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행운이고 기적이다.

물론 처음에는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인생에 네가 왜 끼어드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상처받고 속상하고 아파서 많이 울었다.

상처 주고 속상하게 하고 아픔과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 상처 나고 속상하고 아프고 눈물 나는 것을 서로 보듬어주기로 했다.

자존심 죽이고 양보하고 참아주고 상대방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 점점 하나가 되어 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 이와 같지 않을까?

처음부터 사이좋은 인간관계는 없다.

흠이 없는 완벽한 커플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많은 상처가 있는데 그것을 서로 덮어주고 있는 것이다.

연리목처럼 그렇게 상처 나고 아픈 그 자리에서 하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blog.daum.net/morningnewsi/572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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