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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고 나면 오늘의 무서움도 잊힐 것이다

by 박은석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어디는 더워서 죽겠는데 어디는 대홍수로 물난리를 겪고 있다.

80억의 인구를 지탱하기 어려운지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빙하는 손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있는데 숲과 갯벌은 사람들이 손을 써서 태우고 덮어버리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힘을 모아 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전까지는 변화는 곧 발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하게 되고 변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빨리 변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좋았다.

얼리어댑터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변하는 것이 두렵다.

무섭다.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는 아이들이 한 바퀴를 돌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듯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 변해야만 한다면 아주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다.

아주 천천히.




집 밖에 나가면 죽는다고 해서 집 안에 숨어 지냈던 때가 있었다.

보이면 잡혀갈까봐서 서까래에도 숨고 마루 밑에도 기어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집 밖으로 나가더라도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급하게 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앞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나서서 좋은 일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발 그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다.


친구도 친척도 믿을 수가 없어서 아예 사람이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기도 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을 때 고려왕실을 잊지 못했던 사람들은 두문동(杜門洞) 산속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예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면서 세상에서 잊힌 사람으로 사는 게 낫다고 여겼던 것이다.

왕(王)씨 성이 옥(玉)씨가 되기도 하고 전(全)씨가 되기도 했다.

이름을 바꾸고 자신을 감추어야만 살 수 있었던 무서운 세상이었다.




전쟁의 때에도 무서웠고 전염병이 돌 때도 무서웠다.

비 한 방울 안 떨어지는 가문 하늘이 무서웠고 전 재산을 휩쓸어가버리는 물이 무서웠다.

쌀통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 무서웠고 통장에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무서웠다.

병원에서 빨리 검사받아야 한다는 연락이 무서웠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의 입술을 쳐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까닭모를 아픔으로 아이가 울어재끼는 모습이 무서웠고 휴대폰에 부모님의 전화번호가 먼저 뜰 때가 무서웠다.

비틀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오는 술 취한 아저씨가 무서웠고 술 취하지도 않았는데 휘청거리는 내 발걸음이 무서웠다.


산 아래 있으면 영영 묻혀 살까 무서웠고 산 위에 오르면 떨어질까 무서웠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진한 무서움이 몰려온다.

내가 살아온 날이 단 하루도 무섭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무서움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나를 압박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칼 포퍼는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라는 책을 남겼다.

그렇게 똑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삶이 무서웠나 보다.

그의 삶에 얼마나 문제들이 많았기에 맨날 문제 해결만 하다 갔을까?

그 문제들 하나하나를 맞닥뜨릴 때마다 몹시도 무서웠을 것이다.

자기도 사람인데 어쩔 것인가?

삶은 끊임없이 무서운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우리는 날마다 그 무서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살아간다.

간당간당한데 간당간당 넘어간다.


지나고 보면 안다.

내가 살아온 날이 단 하루도 무섭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살아보면 지나간 날은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지나간 날은 더 이상 나에게 겁을 줄 수가 없다.

내가 그날의 무서움을 밟고 지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무서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나면 오늘의 이 큰 무서움도 싹 잊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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