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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에는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한다

by 박은석


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직업도 다양하고 가정의 경제적인 형편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하다.

내가 살아온 날들도 다양했기 때문에 사실 이런 사람을 만나든 저런 사람을 만나든 부담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내가 살아온 날들을 사는 것 같고, 내가 살아가는 날들을 사는 것 같고, 내가 살아갈 날들을 사는 것 같다.


가난?

했었다.

지금도 큰 차이는 없지만.

병치레?

많이 했었다.

내가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식구들이 많이 아팠다.

죽음?

여러 번 보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 친구, 친구의 어린 아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여러 사람들.


넉넉함?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던 인도네시아 운전사와 젊은 식모와 유모가 있었다.

매일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 딸린 아파트와 젊음과 여유로운 시간들도 있었다.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봤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처럼.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굳이 신경을 쓸 것도 없다.

축하해주고 맞장구만 잘 쳐주면 된다.

어차피 그가 나에게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들러리 역할만 잘 해주면 된다.

부러움?

없을 수가 있나?

당연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좋다.

꼭 나에게 그와 똑같은 좋은 일이 생길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신경 쓸 게 많다.

옷차림도 다시 한 번 살피고 몸동작도 조심하며 얼굴 표정과 말투도 신경 써야 한다.

특히나 갑작스레 큰일을 당한 사람을 만날 때는 굉장히 부담이 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사실 말이 필요치 않을 때가 많다.

그냥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나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면 내가 들려주는 말이 있다.

“작은 일에는 마음을 작게 먹고 큰일에는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합니다.”

물론 포기하지 말라며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희망이 섞인 말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고통은 볼펜으로 쓱 긋듯이 진한 잉크자국을 남기고 지나가지 않는다.

고통은 수채화 채색처럼 짙어졌다가 서서히 흐려진다.

아무리 순식간에 발생한 아픔일지라도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은 상처라면 간단히 소독을 하고 연고만 발라도 된다.

마음 쓸 일도 아니다.

하지만 대수술을 해야 하는 큰 상처라면 다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다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하고 운명을 불평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늘을 노려보면서 신을 향해 하소연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몸부림을 칠수록 몸과 마음만 더 상한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도 해볼 것은 다 해보았다.

그들이 했던 일들을 우리가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삶에서 잘 배워야 한다.


작은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큰일을 놓쳐버려서는 안 된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었다가 끝을 맺는 인생은 지나간 세대로 충분했다.

그 작은 일 말고도 해야 할 큰 일들이 많다.

반면에 큰일은 크게 생각해야 한다.

작게 보지 말고 시간을 두고 길게 내다봐야 한다.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내가 심은 나무라고 해서 꼭 내가 열매를 따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후손이 따먹을 수도 있다.

누군가 먹을 수 있다면 나무 심기는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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