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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듯 살 듯할 때 희망봉이 보인다

by 박은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다.

안 할 수도 없고 하긴 해야 하는데 하자니 손해만 가득할 것 같은 일이 있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데 갈 데도 없다.

“나한테 죽으라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하는데 그게 하필 바로 나다.

어쩔 수 없이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엉킨 실타래 풀어나가듯이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그래도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야말로 희망사항이다.

그래도 희망사항이라도 있으니까 달려들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고 앞으로 갈 수도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못한다는 법은 없다.

눈앞은 여전히 안갯속 오리무중이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안개도 한 발자국씩 걷힐 것이다.

여기까지밖에 못 온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고 여기까지 성공한 것이다.




1487년에 포르투갈의 왕인 주앙 2세는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에게 아프리카 대륙의 끝이 어디인지 조사해 오라고 하였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가 높았던 향신료와 차, 도자기 등을 얻으려면 아시아로 가는 길이 있어야 했는데 육로는 이슬람교도들로 인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찾아야 했다.

유럽의 북쪽은 얼어붙은 곳이니까 지나갈 수 없고 남쪽은 바닷길이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쭉 내려갔다가 꺾이는 곳이 있다면 그 꺾인 지점을 돌아가면 아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길은 아직까지 유럽인들이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지도도 없었다.

그냥 해안선을 따라가야 했다.

육지가 안 보이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육지에 바짝 다가가도 안 되었다.

혹시 모를 암초에 배가 부딪히면 좌초될 수도 있었다. 너무 어려운 길이었다.




실제로 디아스의 배는 폭풍을 만나 길을 잃어고 근 한 달 동안 바다를 배회하기도 했다.

선원들은 말은 안 했겠지만 속으로는 ‘죽었다!’ 생각했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해안선을 보게 되었을 때 ‘살았다!’하면서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때도 그랬다.

그런 선원들을 달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면서 디아스는 계속 항해를 이어갔다.


그도 무서웠을 것이다.

매일매일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도착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럽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에 들어선 것이다.

물살도 달랐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내려갈 때는 바닷물이 뜨거워지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차가운 물이 느껴졌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아프리카의 난류와 남극해에서 흘러온 한류가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면 물은 소용돌이를 친다.

물의 온도에 따라 공기의 온도도 달라지니까 하늘의 바람도 회오리를 친다.

그런 곳을 범선이 통과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끝장이다.

그 지옥 같은 지점에 다다랐을 때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디아스는 그 봉우리를 ‘폭풍봉’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폭풍이 심했으면 그랬을까?

그러나 곧 ‘희망봉’이라고 바꿔 불렀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상상 속의 지점인 아프리카의 남쪽 끝이었다.

그 봉우리를 돌았더니 해안선은 다시 북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1488년이었다.


죽을 듯 살 듯했던 그 자리에 희망봉이 있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희망봉이 보였다.

디아스는 거기까지였다.

원래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째 되던 1497년에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다.

새로운 희망봉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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