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꿈꾸다가 인생 역전당할 수 있다

by 박은석


집 앞에 로또 판매점이 들어섰다.

장사가 되려나 생각했는데 은근 잘 버틴다.

저녁에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그래도 손님들이 있다.

아직 로또 명당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거기서 1등에 당첨 로또가 나온다면 대번에 플래카드 하나 걸리고 사람들이 줄줄이 올 것이다.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로또를 한 번도 안 사봤다.

관심도 없다.


스무 살 어간에 500원을 내고 복권을 두어 번 사본 적은 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은박 코팅을 벗겨내는 복권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권에 당첨되면 뭐할까를 생각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가고 기부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상금이 1억 원이었나 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 돈으로 이런 일들을 다 할 수 있었다.

복권을 긁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조심스럽게 은박 코팅을 벗겼다.

꽝! 꽝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모든 꿈들이 사라졌다.




역시 나에게는 복권 당첨 같은 행운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지금껏 복권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가끔 행운권이라는 전단지가 오면 심심풀이로 긁어보기는 한다.

신기하게도 당첨될 때가 있다.

기분이 좋아지려는 순간에 밑에 문구가 하나 보인다.

당첨금은 무슨 물건을 살 때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결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느라 괜한 지출만 하는 꼴이다.


요즘은 상술이 발달해서 일단 한 달만 무료로 체험해 보라는 것들도 많다.

내 아들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아는지 웹툰 쿠폰 증정 이벤트들을 잘도 가져온다.

한 달 안에 계약 해지만 하면 돈이 안 나간다고 한다.

계약 해지를 안 하면 구독하는 것으로 보고 그다음 달부터는 꼬박꼬박 신용카드로 결제가 이뤄진다.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 ‘계약 해지해야지, 해야지.’ 마음먹다가 잊어버린다.

결국 아들에게만 좋은 일을 해주는 셈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래서 나도 한 번 계산해 봤다.

로또는 1부터 45까지의 숫자 중에서 6개를 골라 6자리의 숫자를 만드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45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그다음에는 남아 있는 44개 중에서 또 하나를 고르고, 그다음에는 43개, 42개, 41개, 40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식이다.


6자리의 숫자이니까 맨 처음 45개 중에서 하나를 뽑는 확률은 6/45이다.

하나를 뽑았으니까 선택의 기회는 5번 남았다.

그러면 남은 44개의 숫자 중에서 하나를 뽑는 확률은 5/44가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도식을 만들면 6/45 x 5/44 x 4/43 x 3/42 x 2/41 x 1/40이다.

이것을 계산해 보면 814만 5,060분의 1이 나온다.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8천만 명인데 10명 중의 한 명이 동시에 로또를 구입했을 때 한 명이 당첨되는 어마어마한 확률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자신이 숫자를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택한 숫자 조합이 뽑힌 것이다.

814만 개가 넘는 숫자 중에서 내가 택한 숫자를 뽑아달라고 목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인생을 역전시키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있는 꼴이다.

나는 그런 모습이 싫다.

인생 역전?

내 인생을 가지고 누구와 시합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역전시키겠다는 것인가?

바뀌면 좋을 거라고?

그걸 누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쩌면, 정말 바뀌고 나면 그때는 오히려 지금을 더 그리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보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그런 동네를 그리워한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꿈엔들 잊힐리야 노래하고 있다.

삶의 귀한 보물은 대부분 지나간 과거에 묻혀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인생 역전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인생 역전을 꿈꾸다가 인생 역전당할 수도 있다.

++ 정지용 <향수>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 음악입니다.

https://youtu.be/GYZbRNVOh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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