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고생하시는 경비아저씨를 위해 한 봉다리

by 박은석

더운 날 고생하는 경비아저씨를 위해 한봉다리

아침 기온도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다.

밖에 5분만 나가 있어도 얼굴에 땀이 흐른다.

동남아시아 더운 지방에 몇 년 살았던 저력을 발휘하여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호흡하면서 속으로는 덥지 않다는 주문을 되뇌면 그나마 조금은 견딜 수 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아마 섭씨 40도는 될 것 같다.

작렬하는 태양빛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날이 이어지고 있다.


더운 지방에서는 가정집에서도 주방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에 열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집에서 밥 짓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서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길거리 음식이 많이 발달된 것 같다.

한반도도 예전보다 더 더워진 걸 느낀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점점 밖에서 사다 먹는 횟수가 늘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말은 많이 하지만 당장 지금이 힘들고 귀찮으니 자꾸 찾게 된다.




이발도 해야 할 겸 밖으로 나가야겠기에 오는 길에 아이들 점심식사를 사 온다고 했다.

그런 말 싫어하는 아내가 어디 있을까?

당연히 오케이다.

반바지에 티셔츠, 구멍 숭숭 뚫린 오래된 크록스 신발을 질질 끌면서 집을 나섰다.

경비실 앞을 지나는데 우리 경비 아저씨 파란색 긴팔 셔츠에 긴 바지를 입으시고 빗자루를 드신 채로 부지런히 주차장을 쓸고 계셨다.

보기만 해도 더워 보였다.

반팔셔츠에 반바지를 입도록 하면 안 될까?


동방예의지국이라서 그런지 남에게 살갗을 보이는 걸 싫어했던 문화가 있었다.

성인 남성이라면 당연히 더워도 양말을 신고 긴바지를 입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다.

그런데 1994년에 그런 통념이 순식간에 깨졌다.

더위 앞에서는 예의도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 갈 때도 반바지를 입었고 슬리퍼를 신었고 폴로셔츠 깃을 세워서 목에 비치는 햇빛을 막았다.

그게 유행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더위는 생활의 모습을 많이 바꾼다.

더위뿐만 아니라 기후에 따라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옷차림도, 집의 모습도, 음식도 달라진다.

기후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지금과 같은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이 더위에서는 밖에서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빈둥거려서 발전이 안 된다고 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가 직접 가서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살아봐야 한다.

땡볕에 밖에 나가서 우리나라에서처럼 열심히 일하면 금방 지쳐서 쓰러진다.

오래 못 산다.

그래서 살살 일을 하는 거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군들 이 더위에 밖에서 일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으셨을 거다.

배려해준다고 하지만 배려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불편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자기가 사는 아파트 1층 현관에 바구니를 하나 설치하고 거기에 간식거리를 잔뜩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택배 아저씨들 맘껏 드시고 힘내시라는 쪽지를 문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별것 아니다.

사실은 대단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생각도 못 하는 일이다.


머리를 깎는 중에도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궁리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상대방이 부담을 적게 받을 수 있는 일, 이 더위를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일,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그래! 더위에는 콩국수지! 걸쭉한 콩물에 얼음 동동 띄워서.

마침 점심식사 시간 전이다.

딱 맞는 시간이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께서 자기 일처럼 좋아하신다.

우리 식구들 점심식사 한 봉다리 그리고 경비아저씨 콩국수 한 봉다리.

까만 봉다리 두 개 들고 오는 마음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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