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의 소믈리에이다

by 박은석


역사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굵직굵직한 사건의 전후에 음식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왕건이 목이 말라 물 한 바가지 달라고 했는데 바가지에 버드나무 이파리 하나 띄워서 주었다는 이야기.

세종대왕의 아들 중의 하나는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서 죽었다는 이야기, 영조임금이 고추장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이야기, 커피를 좋아하는 고종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커피에 독약을 탔다는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다.


삼국지를 보면 제갈공명이 사람 얼굴 모양의 만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여간 제갈공명은 못하는 게 없는 인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의 도자기를 빼앗아서 유럽에 수출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공산혁명도 백성들의 굶주림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잘 먹어야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다.

못 먹으면 힘을 낼 수가 없다.

그리고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절대 권력자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인지 아닌지 분별해야만 했다.

조선의 궁궐에 대장금이 있었듯이 중세 유럽에서는 ‘솜(Somme)’이라는 직책의 사람이 있어서 영주의 음식을 관리했다.

그들은 최상의 맛과 향을 제공하도록 식재료를 잘 선정하고 관리하며 요리 기술을 발전시켜 갔다.


지중해 무역을 통해 유럽사회에 동양의 차와 커피 그리고 향신료가 전해지면서 식생활문화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차를 마시기 위해 화려한 찻잔들이 인기를 얻었고 그에 맞춰서 식사 예절도 복잡하게 변하였다.

고급 레스토랑들이 생겨나면서 그곳만의 독특한 음식을 개발하여 차별화시켜갔다.

솜의 업무도 전문화되어 요리만 전담하는 요리사, 홀에서 주문과 서빙을 전담하는 웨이터 등의 일이 구별되었다.




그러던 중에 프랑스에서는 포도주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유럽인들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가 포도주였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식사시간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협상자리에서는 포도주 한 잔에 따라 국가의 중대한 정책까지 결정지을 수 있었다.

포도주 한 잔 잘 마시면 극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니 최상의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고 그에 못지않게 좋은 포도주를 찾아내고 보관하는 일이 무척 중요해졌다.


포도주를 많이 마신다고 해서 포도주 맛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맛을 분별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했고 섬세한 감각이 동원되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지방의 포도주에서는 어떤 맛이 나고 포도주 제작의 시기, 숙성 보관의 방법, 유통망 등 포도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가야만 했다.




이들의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소믈리에(Sommellerie)’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렇게 포도주에서부터 시작된 소믈리에는 홍차 소믈리에, 커피 소믈리에 등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 어쩌면 보잘것없는 그 일을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일로 만들어놓았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하찮아 보이더라도 그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그렇게 시간과 땀이 쌓이면서 어느덧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겼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람들이 전문가를 존중하는 것은 그의 실력 못지않게 그가 기울인 시간과 열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잘 모르더라도 내 인생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이다.

나만큼 내 인생을 위해서 힘과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없다.

나는 내 삶의 소믈리에이다.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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