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

by 박은석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공부 못하면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엄포는 선생님의 입을 통해 내 가슴에 튼튼한 성곽을 만들었다.

그 성 안에 갇혀서 오직 공부해야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퍼뜩 떠오른 모습은 대통령, 육군 대장이었다.

왜 하필 육군 대장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군인이 인기 있었고 군인 중에서는 단연 육군이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먼저 육군 대장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대장이 별 몇 개인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내가 봐왔던 대통령들도 사실 육군 대장은 못 되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육군 대장이 되려면 공부를 빡쎄게 했어야 했다.

일단 사관학교에는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도, 육군 대장도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부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공부해서 유명해지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뭐니 뭐니 해도 연구 결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과학자가 딱이었다.

과학자는 분명히 자신의 업적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연구하고 실험을 해도 연구 결과가 형편없거나 실패하면 어떡하지?

과학자는커녕 돌팔이 실험생밖에 안 될 것 같았다.

패스.


그렇게 하나씩 패스하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점점 작아져갔다.

대신에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 밥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입신양명이라느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느니 하는 원대한 말들은 내 인생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여겨졌다.

훌륭한 사람은 하늘이 점찍어주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민초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리 잡풀이어도 뿌리를 뻗어서 살아가는 것은 중요했다.

질기게 질기게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내가 다시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을 쓴 배우 김혜자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이다.

문화평론가인 박상미 선생이 인터뷰를 해서 글로 묶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이라는 책에서도 그 내용이 나온다.

김혜자 선생은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색다르다.


“내가 안 보내면 그 아이들 굶어요.

나는 돈이 생기면 아이들에게 보내는 일이 1순위예요.

내가 배우로 인정받고 유명해져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잖아요.

내가 유명한 사람인 덕분에 내가 아프리카 갈 때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그걸 보고 같이 돕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요.

나는 계속 인정받는 배우가 되어야 해요.

내게 가장 큰 걱정이, 언젠가 내가 연기를 못하게 돼서 아이들에게 밥값을 못 보내면 어떡하나...

그거예요.”


입신양명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되고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된다.

그러니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냐?”라는 말은 이제 그만이다.

나만 잘 된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사실 유명해지려면 그 방법은 너무 많다.

흉악범도 전국에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보약을 먹어서 자기관리 잘 하고 돈 많이 벌어서 집안도 잘 건사하고 권력을 얻어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이런 유명세는 나에게는 해당되지도 않고 나와는 맞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명성을 얻을 수도 없고 얻고 싶지도 않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는 이제 단순하다.

나 때문에 누군가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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