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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1년 200권 책읽기 운동
나의 책읽기는 산을 종주하는 것 같다
by
박은석
Aug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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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00권 책읽기 운동을 벌인 지 벌써 13년째다.
해마다 200권을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목표가 200권이다.
목표는 달성할 수도 있고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해는 200권을 훌쩍 넘기기도 했지만 어떤 해는 목표량에 한참 부족했던 적도 있었다.
대하소설처럼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도통 집중이 안 되는 책들도 있다.
나에게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그런 책이다.
구입한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읽히지 않는다.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1000페이지 넘는 분량 때문에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게으른 탓에 또 잊어버릴까봐서 늘 책상 위에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놓고 있다.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율리시스>는 안 읽었어도 읽은 척하기 딱 좋은 책이다.
올해 벌써 두 번째 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망각의 숲을 헤매는 기분이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정독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책을 쓴 이의 생각을 다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자꾸 앞부분을 들추게 된다.
‘뭐 읽었더라?’라는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달달 외우다시피 책을 봤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충분했다.
그때는 책의 내용이 왼쪽 페이지였는지 오른쪽 페이지였는지 어느 위치에 적혀 있었는지까지 생각날 정도로 읽었다.
많은 도움이 되었냐고?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에는 지우개로 지우듯이 싹 잊혔다.
나의 책읽기는 등산으로 치면 종주하는 방식이다.
부랴부랴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내려가는 여정이다.
목표가 어디냐고? 정상이 아니다.
목표는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서 무슨 나무를 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산림감시원도 아니지 않은가? 설악산,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것이면 충분하다.
러시아 고전문학처럼 난해한 책들은 작가의 연보와 줄거리 및 평론가의 글을 먼저 읽어보기도 한다.
영화로 제작된 책은 영화를 통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그러면 어려웠던 책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책읽기에도 욕심을 버려야 한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노트에 베껴 적으면서 읽는 방법도 좋다.
그러나 책 한 권에서 한 줄만 건져도 횡재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한 줄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원고지를 몇 장이나 버렸을지 생각해보면 그 한 줄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카페에 앉아 멍때리느라 지불한 커피값도 5천원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돈으로 환산해서 비싸다느니 돈 아깝다느니 해서는 안 된다.
책은 보물이다.
내가 읽어서 보물이고 간직하고 있어서 보물이고 책꽂이에 꽂혀 있어서 보물이다.
보물은 언제 어디서나 보물이다.
야구선수가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항상 홈런을 칠 수는 없다.
파울도 나오고 헛스윙도 한다.
1루타도 치고 2루타도 친다.
그러다가 홈런을 치기도 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3시간 동안 경기했던 내용을 다 기억해내지 못한다.
중요한 몇 장면만 기억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그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한 가지만 기억한다.
그것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으면 대단한 거다.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페이지마다 별표를 그리고 알록달록 색칠할 필요는 없다.
읽은 책에서 한 줄만 떠올릴 수 있어도 성공한 책읽기이다.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숲속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빨리 숲을 통과해서 산행을 마치는 것이 종주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율리시스>를 본다.
무슨 내용이냐고?
그딴 거는 묻지 마라.
나는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율리시스>의 숲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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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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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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