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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00권 책읽기 목표 달성을 앞두고

by 박은석


나는 장기전에 약하다.

긴 시간 동안 해야 하는 일보다 속전속결로 끝내는 일을 좋아한다.

질질 끌면 속이 탄다.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도 어떤 이들은 돼지고기라서 노릿하게 구워야 한다며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대충 핏기가 가시면 상추를 손에 얹고 냉큼 고기를 집어 온다.

6남매가 한 집에서 살았으니까 남들보다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생존본능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먹어 왔는데 아무 탈이 없었다.

하긴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고기를 날로 먹고도 잘만 살았다.


라면을 끓일 때도 봉지에 적혀 있는 표준 레시피보다 조금 일찍 불을 끈다.

잘 익은 라면보다 설익어서 쫄깃할 때가 더 맛있다.

4~5분 기다리라고 하면 나는 3~4분에서 결정을 내린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은 참 곤혹스럽다.

마트에 가면 살 것만 사고 장볼 것만 보고 빨리 계산하는 게 좋다.




학창시절 달리기를 할 때도 나는 항상 단거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체력장 측정할 때 제일 싫었던 게 오래 달리기이다.

운동장 한 바퀴면 뛰면 좋은데 같은 코스를 또 돌고 도는 게 싫었다.

100미터 기록은 상위권인데 1,000미터 기록은 중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내 속으로 나는 장거리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세뇌시키곤 했다.

그 좋아하는 탁구를 칠 때도 스카이서비스를 구석으로 콕 찔러 넣고 상대가 받아넘기면 3구째에는 무조건 타격하려고 했다.

스매싱이든 드라이브든 커트든 3구에 승부를 걸었다.

빨리 끝내고 싶었으니까 그랬다.


시험을 볼 때도 단번에 패스하는 게 목표였다.

재수, 삼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했던 공부를 다시 하고 싶지가 않았다.

독학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하겠다며 면허시험장에서 수입증지를 열두 번 붙였던 적 외에 시험에서 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단번에 합격이 목표였다.




이렇게 단기간에 승부를 거는 내가 긴 시간을 견디는 목표를 세워본 적이 있었다.

1박 3일 지리산 종주였다.

한밤중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새벽에 구례역에 도착한다.

그 새벽에 노고단에 올라 해돋이를 구경하고 하루를 꼬박 걸은 후 산장에서 하룻밤을 잔다.

3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천왕봉 정상에서 기념촬영하고 하산한다.

이런 미친 산행이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니까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 산행을 계획하고 나니 내 체력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3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매일 저녁에 산책길을 달리기로 했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보니까 조금씩 거리가 늘어났다.

신기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도 쉬지 않고 10Km를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못 뛰는 게 아니라 안 뛰었던 것이다.




1년 200권 책읽기 운동을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일이면 올해의 200권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어떻게 그 일을 하냐고?

나도 모르겠다.

13년 전에 미친 척, 해보자고 마음먹고 책을 들었다.

5~6년 잡고서 천권을 읽는 게 목표였다.

책 읽는 속도도 느려터진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1년 100권, 200권, 300권을 읽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중간에 몇 년은 목표량에 한창 부족했다.

부끄러워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이제 200권이 먼 산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뛰고 또 뛰다보니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읽고 또 읽다보니 이제는 1년 200권이 습관이 되었다.


처음부터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안 할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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