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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함부로 자르지 마라!
by
박은석
Sep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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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귀를 건들기 시작할 때쯤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손가락을 뒷머리에 꽂아 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슬슬 답답해진다.
이발을 한 지 3주일이 지나면 반복되는 현상이다.
참을성이 약한 나는 몇 번 갈등을 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이발을 하는 편을 택한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5센티미터나 될까?
이발기로 슈웅 밀어낼 때 그 감촉이 좋다.
가위로 싹둑 자를 때 그 소리가 좋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산뜻한 모양이 나온다.
Before와 After가 확연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덥수룩했던 동네 삼촌은 사라지고 말끔한 아저씨로 변신한다.
머리를 감고 다시 거울 앞에 앉아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이제 1주일은 홀가분할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다음 1주일은 적응되어 그저 그런대로 지날 것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또다시 자라는 머리를 언제 깎을까 고민하며 지낼 것이다.
1885년에 단발령이 시행되었을 때는 머리카락이 잘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면서 머리카락 한 올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 긴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댕기, 망건, 두건, 비녀, 갓, 패랭이 등 여러 도구들이 동원되었다.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두껍게 땋은 ‘가채’를 머리 위에 얹고 싶어 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뽀글뽀글한 금발 가발을 쓴 사람을 동경했다.
돈도 있어야 했고 무엇보다 권력이 있어야 그런 가발을 쓸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에서는 만주풍의 변발이 유행했었다.
영화 황비홍에서 보이는 이연걸의 머리 모양처럼 주변머리는 깨끗이 밀고 가운데머리를 길게 땋아서 늘어뜨린 스타일이다.
저렇게 머리가 길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쓸 데 없는 생각이다.
그때는 그게 훨씬 편했다.
머리카락이 길면 비위생적이라고 했던 것은 일본놈들의 교활한 상술이었다.
먼저 서구화가 되고 산업화가 된 일본은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 모자와 양복과 구두와 고무신을 팔아먹고 싶었다.
그러려면 옆 나라인 조선이 머리를 잘라 망건과 갓을 버려야 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서양식 모자를 쓸 것이고 한복 두루마기 대신 양복을 입고 구두와 고무신을 신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라도 머리를 자르게 했다.
짧은 머리가 유행을 타면서 긴 머리에 댕기를 묶고 널을 뛰고 그네를 타는 소녀는 우리 마음속에만 남게 되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이니 건들지 말라는 표시로 빨간 댕기를 묶은 소녀의 모습이 정겹게 떠오르는 것은 내가 조선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빗소리가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이 <긴 머리 소녀>라고 노래를 불렀을까?
아무리 짧은 머리 시대에도 긴 머리가 그리운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앞에는 눈썹 선을 기준으로 한 일자로 자르고, 뒤에는 귀 밑 3센티로 잘랐던 간난이 스타일이 전국 표준이었다.
얼마나 예쁘지 않았으면 못난이 인형으로 그 모습을 기억할까?
급한 돈이 필요한 집에서는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들어오시면 식구들이 통곡하기도 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다스릴 때에는 길거리에서 경찰들이 가위를 들고 서 있기도 했었다.
걸리면 그 자리에서 싹둑이었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명절 전날이면 조상님께 잘 보이려고 동네 이발소에는 긴 줄이 들어섰다.
짧게 자르든 길게 기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머리카락에도 그 사람의 자존심이 있고 인격이 있다.
내 머리를 자르느니 차라리 내 목을 치라는 말은 단발령에 항의했던 이들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기 전에 미용사가 항상 물어본다.
“어떻게 자를까요?”
++비 오는 수요일에 <긴 머리 소녀>를 들어봅니다.
https://youtu.be/CMaD9vhmWIE
https://youtu.be/mHhkXM07_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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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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