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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작은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by
박은석
Sep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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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왕복 2차선의 작은 길 옆으로는 가로수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요즘 그 가로수의 잎사귀들이 색깔을 바꿔가고 있다.
진녹색의 잎사귀들이 조금씩 알록달록한 색으로 갈아입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는데 지금은 파란 하늘빛과 어우러져서 살짝 물이 빠져 있다.
조금 지나면 오색찬란한 단풍 터널을 만들어줄 것이다.
어디 경치 좋은 데를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꽃 피는 봄의 가로수 길에서는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리는 꽃비를 맞을 수 있고, 칠팔월 한여름의 가로수 길에서는 선선한 나무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가을의 가로수 길을 걸으려면 해가 뉘엿이 가라앉는 저녁시간이 좋겠다.
황금빛 화사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겨울의 가로수 길은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려 겨울궁전을 만들어 놓은 날을 택하겠다.
이런 경치를 끼고 사는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어디 내놓아도 괜찮은 가로수길이만 1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줄기도 가늘었고 키도 크지 않았고 가지도 몇 가닥 없어서 앙상하고 볼품없었던 나무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가로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아하기도 했다.
기왕에 가로수를 심으려면 큼지막지한 나무들을 뽑아서 심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매일 그 길을 다니면서도 나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나무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나무들이 늘 그 자리에 없는 듯이 여겼다.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면서 어느새 나무가 내 키의 몇 갑절이나 커버렸다.
줄기 밑동은 내 허리보다도 굵어졌고 내 팔뚝만한 가지들 여러 개가 하늘로 뻗어 있다.
10년이 넘도록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더니만 이렇게 변했다.
매일 똑같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매일 변하고 있었고 매일 성장하고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잠시 높이뛰기 선수를 한 적이 있었다.
또래보다 키가 좀 컸고 뜀박질도 잘해서 선생님이 나를 뽑으셨다.
도 대표선수가 되면 전국체전에도 나갈 수 있다며 열심히 훈련받았다.
그러나 예선탈락이었다.
고작 한두 달 연습해서 될 게 아니었다.
홍명희 선생의 소설 <임꺽정>에서는 어렸을 때 작은 나무 하나를 심어놓고 매일 그 나무 위를 펄쩍펄쩍 뛰다 보니 나중에는 웬만한 담장도 훌쩍 뛰어넘는 뛰어넘기의 달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높이뛰기의 기술이란 게 별것도 아니었다.
내가 심은 나무보다 높이 뛰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뛰어넘었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높이뛰기를 잘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또래들과 비교해도 고만고만했다.
하지만 뛰는 시간이 하루씩 쌓이면서 실력도 하루만큼씩 늘어갔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나니 10년 된 나무를 뛰어넘는 달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순간에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공을 들여서 풀어가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10년을 내다보며 심는다.
오늘 심어서 내일 열매를 따먹을 수는 없다.
심은 지가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만큼밖에 자라지 못했냐며 핀잔을 줘서도 안 된다.
긴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한 자리에서 충분한 시간 동안 뿌리를 내리면 그다음은 알아서 잘 큰다.
강력한 펀치 한방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약한 잽들을 무시했다가는 골병날 수 있다.
어리석어 보여도 시간을 끄는 사람이 이긴다.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
티 안 나지만 눈에 안 보이지만 작은 것들이 무섭다.
우리는 매일 작은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너무 작아서 무시해버리기 일쑤이지만 그 작은 것들이 쌓여서 키 큰 나무도 되고 무성한 수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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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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