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슬픔의 무게는 어느 만큼일까?

by 박은석


햇빛 찬란한 가을 아침이었다.

몸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지만 눈은 여전히 꿈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몸의 분신처럼 달라붙어 있던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얼른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쿵!’ 심장이 크게 울리고 숨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얼른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률이 높다.

역시 그랬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건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받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힘든 상황인 경우도 많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그분들도 안다.

그냥 전화로나마 누군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릴뿐이다.

전화를 끊을 때면 내가 능력이 없다는 게 서글퍼진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 우물에 비친 못난 사나이처럼 내가 밉다.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때는 그의 슬픔에 나의 슬픔이 더해져서 두 배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칼로 물을 쳐도 갈라지지 않는 것처럼 슬픔은 나누려고 해도 나눠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감당해야 할 슬픔의 양이 정해져 있을까?

그 무게가 정해져 있을까?

그러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슬픔의 양이 크고 무겁더라도 80년 인생, 29,200일로 나눠버리면 하루하루 부담해야 할 슬픔의 양은 그리 많지도 무겁지도 않을 것이다.

매일 동일한 분량으로 슬픔을 겪다 보면 그게 일상이 되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슬픔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슬픔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다.

한동안 잠잠했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쾅!’하고 벼락 치듯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말뚝처럼 박혀버린다.




남들도 다 아픔을 겪고 살아간다는 말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하등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남들의 아픔은 남들의 아픔이고 나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다.

남들의 슬픔은 곧 걷히는 슬픔이고 나의 슬픔은 걷힐 것 같지 않는 슬픔이다.

남들은 그 슬픔을 견딜 수 있겠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다.

그게 나의 슬픔이다.

슬픔의 속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지 슬픔의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적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도 계속 슬픔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빠져나올 방법도 없고 끄집어 올려줄 동아줄도 없다.


처음에는 눈물이라도 나왔다.

하늘을 향해서 “나에게 왜 이러냐고요!”라고 고함을 칠 힘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눈물도 말라버리고 힘도 사라져버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멀리서 메아리치듯 들려오지만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의 슬픔이 그의 슬픔일 수 없듯이 그의 슬픔이 또한 나의 슬픔일 수가 없다.

내가 그의 슬픔 속으로 들어가서 손이라도 뻗어보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는 홀로 자신의 슬픔을 겪어야 한다.

나는 단지 그가 슬픔에 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가 겪는 슬픔의 양은 지구만큼 클 것이고 그 슬픔의 무게는 그의 인생의 무게만큼 무거울 것이다.

자신의 짐을 지고 가기도 버거운 나이인데 견딜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는 젊으니까 내가 그 짐을 대신 지겠다고 할 수가 없다.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도 없다.

누구나 자신의 슬픔은 자신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묵묵히 지켜보는 것밖에 없다.

조용히 그분의 슬픈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분이 그 무거운 슬픔의 무게를 홀로 견디기를 기도할 뿐이다.


++새벽에 사랑하는 딸을 먼저 천국으로 보내신 분의 전화를 받았네요.

그분이 짊어져야 할 슬픔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밉네요.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제 못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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