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되는 세상

by 박은석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세상의 주인이 되고 동시에 다른 세상의 손님이 된다.

손주들이 보고 싶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어르신들은 지하철을 한 번만 타도 피로를 견디지 못하신다.

한 일도 없이 잠만 잔다고 한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자식들은 그거는 너무 쉬운 일이라고 한다.

자신들은 도시의 주인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지하철 몇 시간을 타도 쌩쌩한 젊은 자식들도 오랜만에 부모님 댁을 찾아 밭에서 한 시간 일을 하면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백발의 부모님은 젊은 놈이 그깟 일 했다고 힘들어하느냐며 그 몸으로 어떻게 가족을 건사하겠냐고 핀잔을 주신다.

농사일을 하는 그 밭에서는 그가 손님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무슨 일을 해도 익숙하고 쉽게 한다.

전혀 피로를 느끼지도 않는 것 같다.

반면에 손님은 소소한 일에도 어설프고 실수가 많다.

정성을 다해서 일을 망치기 일쑤다.




주인과 손님은 문 하나 차이로 갈린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주인이지만 옆집에서는 내가 손님이다.

옆집은 우리 집과 평수도 같고 구조도 같지만 그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남의 집에 왔다는 느낌이 팍 든다.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기 때문이다.

문 하나 차이다.

어렸을 때 ‘문’이라고 적힌 낱말 카드를 180도 돌려서 ‘곰’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문’과 ‘곰’은 어느 쪽에서 읽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주인과 손님도 그와 비슷하다.

어느 곳에서 부르느냐에 따라 주인이 되기도 하고 손님이 되기도 한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를 태평양 한가운데 빠뜨려보면 물고기를 잡기는커녕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한다.

개헤엄, 아니 사자헤엄을 치면서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를 케냐의 사파리에 내려놓으면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다가 목말라 죽을 것이다.




향유고래는 크기가 20m에 달하고 몸무게도 60톤에 육박한다.

태어날 때부터 키가 4m나 되는 거구이다.

그런데도 가라앉지도 않고 숨을 헐떡이지도 않고 유유히 헤엄을 친다.

향유고래가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바다가 그를 주인으로 받아주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집이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도 내 몸이 나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주인이면 주인답게 살아야 한다.

내가 주인이라고 해서 맘대로 살 수는 없다.

그러면 탈이 난다.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 맞춰주어야 한다.

내 몸은 나에게 맞는 적절한 몸무게를 요구한다.

한없이 무거워지면 안 된다.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며 맘껏 먹어서 몸무게가 100Kg이 되면 다리 관절이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다.

내 다리가 내 몸에 손님이 들어왔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내가 영원히 주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인정해야 한다.

내 땅, 내 집이라고 하는 곳도 이전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땅이었고 다른 사람의 집이었다.

지금은 내가 주인이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잠시 동안 맡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할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잠시 이 집에 다녀가는 손님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 이 나라, 이 세상도 그렇다.

지금은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지구 자체이고 우리는 손님일 뿐이다.

그러니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된다.

손님처럼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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