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인기다.
젊은 나이에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일찍 은퇴하고 노후를 여유 있게 지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보통 50-60대에 직장에서 은퇴하는데 파이어족은 40대 초반까지 일하고 훌훌 떠나기를 원한다.
내 집 마련은 일찌감치 이루었다.
저축한 돈도 많고 수익성 좋은 분야에 투자를 했으니 머리 아프게 직장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더 건강할 때 세계일주도 하고, 마음에 원하는 일들을 실컷 하면서 살겠다고 한다.
그 정도로 살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의 돈을 모아야 할까?
10억?
20억?
100억?
그건 각자의 씀씀이와 형편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모아 놓은 돈이 부족하면 아껴 쓰면 된다고 한다.
인생은 한 번이니 이 한 번의 인생을 실컷 즐기며 살자고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걸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파이어족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자신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남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 없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러면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부러운 감정 없이 살아갈까?
그건 아니다.
태어나서 봤더니 으리으리한 집안의 아들로 딸로 태어난 사람들은 어땠을까?
일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던 중세의 귀족들은 평생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사람, 사냥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사람, 국제 정세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음악과 미술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엄청난 공부를 해야 했다.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서 어학, 문학, 음악, 미술, 말 타기, 총검술 등을 배워야 했다.
동화 속 임금님들은 산해진미를 쌓아놓고 실컷 먹고 놀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의 왕은 그렇게 먹고 놀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 수라상으로 보이겠지만 임금에게는 그냥 매일 보는 밥상일 뿐이었다.
신하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는 가운데 “여봐라!”하고 호통을 치는 왕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실제의 왕은 그렇게 큰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말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백성들이야 궁궐 안에 들어가 보는 것이 평생소원일 테지만 임금은 궁궐 밖에 나가 보는 게 소원이다.
아무리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라 해도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삼천리강산을 싸돌아다녔지만 가진 것 많은 임금들은 궁궐이라는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어디 한번 나가려면 신하들의 허락을 받고 백성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여유 없는 사람이 싸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여유 있는 사람이 싸돌아다닌다.
내가 싸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콕 박혀서 지내는 이유는 왕족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말싸움하면서 알려주셨다.
아버지는 신라 임금 박혁거세의 자손이라고 큰소리치셨고 어머니는 조선 왕가인 전주 이씨의 가문이라고 맞받아치셨다.
만약 내가 엄청난 행운을 얻어서 파이어족이 된다면 어떤 삶을 살까?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가난한 농사꾼 네모리노는 그런 행운 덕택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그런 행운을 얻자 지하세계로 들어가 꼭꼭 숨어 살았다.
불꽃처럼 빛날 수도 있고 불꽃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파이어족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파이어족이든 아니든 인생은 누구에게나 다 복잡하다.
++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주인공 네모리노가 파이어족이 되기 직전에 부른 노래입니다.
너무 가난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못합니다. '사랑의 묘약'이라는 약을 마시면 하루 안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는 말에 속아 그 약(그냥 포도주)을 삽니다. 가진 돈이 없어서 군인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군대에 지원합니다. 지원금이라도 받으려고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는 제목이고 멕시코인 테너 가수 롤란도 빌라존(Rolando Vilazon)이 부릅니다.
https://youtu.be/46quraxFf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