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목소리가 커서 시원시원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귀가 약한 어르신들은 내가 당신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신다.
어디 가서 응원단장은 못 했지만 큰 목소리는 우리 팀을 응원할 때 톡톡한 역할을 한다.
<삼국지>의 장비가 적장과 1대 1로 싸울 때가 있었는데 장비의 우렁찬 소리를 듣고 적장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아웅다웅 싸울 필요 없다.
목소리 한 방이면 끝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큰 목소리를 동경했었나 보다.
목소리 큰 것은 군 복무 시절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군인의 군기는 목소리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군가를 부를 때도, 상관에게 경례를 할 때도 크게 했다.
한 번은 부대장님에게 “충성!”하고 경례를 붙였더니 그 목소리가 맘에 든다며 3박 4일짜리 포상휴가를 주셨다.
군 생활하면서 나처럼 목소리 덕분에 땡잡은 경우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 큰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큰 목소리 때문에 곤혹을 치를 때도 종종 있다.
내가 뭐라고 하면 아이들은 왜 아빠는 화를 내냐고 한다.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는지 너무 억울하다.
어느 모임에서 회의를 할 때는 다들 자기 목소리를 냈으면서도 유독 목소리가 컸던 내가 대표가 된다.
언젠가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나름 열심이었는데 지휘자가 자꾸 나에게 소리를 작게 내라고 했다.
내 딴에는 작게 냈는데 지휘자의 귀에 거슬렸나 보다.
내 목소리가 자꾸 튄다고 하길래 나 때문에 성가대가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것 같아서 그다음 주부터 성가대를 그만뒀다.
고등학교 때 합창반 반장이었는데 그때 선생님은 왜 이런 목소리를 가진 나를 합창반에 받아주셨는지 모르겠다.
몇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를 때면 다들 내 목소리에 따라온다.
음정이든 박자든 모두 내 맘대로다.
악보가 이기는 게 아니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목소리란 게 참 신기하다.
목에 힘을 빼고 낮게 소리를 내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기분이 나쁘거나 어디 아픈 것처럼 여겨진다.
반면에 목소리를 크게 하고 톤을 조금만 높게 하면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사람 같다.
굉장히 반가워하는 것 같고 건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판가름할 수 있다.
그러니까 괜찮은 척, 건강한 척하려면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게 낫다.
나치에 잡혀 수용소에 갇힌 빅터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이 모두 병약한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프랭클 박사는 건강한 척했다.
면도를 할 때 살짝 상처를 내곤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만들었다.
걸음걸이도 힘 있게 했다.
목소리도 엄청 크게 했을 것이다.
덕분에 그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도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다.
목소리를 크게 내도 괜찮은 시절을 살고 있다.
누구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목소리니까 내 맘대로 소리를 내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어디서 목소리를 크게 내냐며 도리어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목소리 죽이며 지내야만 했던 시절들도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목소리 작은 사람들은 숨죽여 살았다.
그때는 살아가기도 많이 힘들었다.
목소리가 약해지면 목숨도 약해진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을 때 골목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은석아! 밥 먹어라!”
그때 우리 어머니는 꼭 원더우먼 같았다.
힘이 철철 넘치셨다.
그러던 어머니이신데 지금은 조용조용해지셨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도 좋은데 가끔은 그때의 쩌렁쩌렁했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