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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카페에 앉아 있는 ‘나’라는 사람은...
by
박은석
Sep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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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작은 카페가 하나 더 생겼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해서 곧바로 앞으로 가든지 왼쪽이나 오른쪽 길을 가든지 200미터를 가기도 전에 카페를 만날 수 있다.
5분 거리에 열 곳 정도의 카페가 성업 중이다.
커피를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카페를 보면 반가운데 그래도 걱정이 된다.
왁자지껄한 상권이 형성된 동네가 아니다.
저녁에만 왁자지껄하는 먹자골목이다.
말이 먹자골목이지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
맛집이라 불리는 식당도 특별히 없다.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저녁식사를 하며 그날의 피로를 잠시 풀고 가는 동네이다.
그런 동네에 카페가 계속 들어선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유명한 카페이다.
우유를 듬뿍 섞은 카페라떼가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는 카페이다.
에스프레소의 독한 맛을 즐기는 나로서는 그저 그런 카페인 것 같은데 이 집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늘 손님이 가득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몇 천 원을 내면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밥 먹으면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데 왜 그걸 돈 주고 사 마시냐고들 했다.
거기다가 커피 값이 왜 그리 비싸냐고도 했다.
밥값 못지않게 많이 받는다며 물장사가 밥장사보다 낫겠다고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반박을 했다.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게 낫겠냐, 술을 마시는 게 낫겠냐?
커피에는 우리 몸에 좋은 효소가 엄청나게 많다.
자판기 커피는 몸을 망치는 커피다.
좋은 커피를 잘 마시면 보약이 된다.
보약 한 첩이 얼마냐, 그에 비하면 커피 값은 싼 거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하루에 고작 몇 천 원인데 열심히 일한 나에게 그만큼 투자하는 것이 아까운가?
그만큼의 사치도 누리지 못하는가?
이런 말을 쏟아부으면 상대방은 깨갱했다.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는 내가 유럽의 어떤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런 매력적인 시간을 제공해준다.
커피는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귀한 차였으니까.
커피 잔은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으니까.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카페에서는 내가 알지 못했던 고급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놀려대도 다들 웃어넘길 수 있었으니까.
시대가 많이 변하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복합적인 분위기가 내 몸과 마음을 감싸준다.
그래서 카페에 앉아 있으면 커피 잔 뒤로 살짝 물러난다.
그 순간 나의 본 내를 감출 수 있다.
커피 향에 나를 숨기고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아침부터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고 또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숨기고 싶은 것도, 드러내고 싶은 것도 다 그의 모습이다.
지금은 도도한 모습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지만 조금 후에는 나사 풀린 기계마냥 사무실과 집에서 멍하니 앉아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모습을 보여주며 산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꼬아서 글 뒤에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앞세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런 면도 있다며 커밍아웃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 앞을 지나쳤다.
누구나 그 앞을 지나면 그 카페에 들어갈 것 같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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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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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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