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제 내 앞에서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by 박은석


가스통 루르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로 각색되어 이 시대 최고의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1870년대 파리 오페라극장을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크리스틴은 소프라노 가수를 꿈꾸었는데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음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 오페라 무대의 무용수가 되었지만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남이 듣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사고가 생기면서 얼떨결에 그녀가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 역을 맡게 되었다.

오페라에 투자했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크리스틴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Think of me, think of me fondly when we've said goodbye.” 음악이 끝나자 관중들이 “브라바(Vrava, 남자 가수는 브라보)!”를 외친다.

새로운 프리마 돈나의 탄생이었다.




크리스틴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며 대번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 있든가 권력이 있든가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실력이 빼어나게 좋아서 주목을 받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대부분 그런 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가끔은 흙 속에서 진주조개를 발견하듯이 유리구두에 딱 맞는 신데렐라가 등장하기도 한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게 언제일지 누구일지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다.

그런 일이 2008년 여름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도 일어났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는 세계적인 음악의 도시이다.

해마다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여 음악의 향연을 벌인다.

그중의 압권은 역시 여름음악회이다.




잘츠부르크 여름 음악회 티켓은 1년 전에 이미 매진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기가 높은데 2008년에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주인공은 롤란도 빌라존과 안나 네트렙코가 맡는다고 했다.

이 둘이 나온다는 소식에 음악팬들은 난리가 났다.

그런데 공연을 앞두고서 안나 네트렙코의 임신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인 음악회는 이런 일로 일정을 취소하지 않는다.

대신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를 섭외한다.

당연히 급하게 섭외하느라 안나 네트렙코 급의 가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스물다섯 살의 젊은 가수를 초빙했다.

유럽 무대에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초짜였다.

러시아 연방에서 해방된 조지아 출신이다.

내가 빌라존의 입장이라면 나를 뭘로 보고 이런 새내기와 함께 하라는 거냐며 언성을 높일 만하다.

음악회를 망치면 책임질 거냐고 따질 만하다.

어쨌든 시간은 다가왔다.




오페라는 노래도 잘해야 하지만 연기력도 뛰어나야 한다.

안나 네트렙코가 제격이다.

그런데 프리마 돈나가 이름도 생소한 여자로 바뀌었다는 소식에 표를 환불한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잘츠부르크의 명성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모여들었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여자 가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A Je veux vivre(꿈속에 살고 싶어라)>를 부를 때는 모두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브라바!”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프리마 돈나 니노 마차이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 전에 표를 팔아버린 사람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한 시간 전에 표를 얻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대역으로 출연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니노 마차이제는 얼마나 흥분했을까?

인생이 흥미 있는 건 언제 내 앞에서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 아닐까?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의 <Think of Me>
https://youtu.be/kZpvaRWak64

++니노 마차이제와 롤란도 빌라존이 열연한 2008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A Je veux vivre(꿈속에 살고 싶어라)>
https://youtu.be/BC0PENY1Cds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