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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취하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인생이다
by
박은석
Sep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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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보험사들의 말처럼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 계단 한 계단 차곡차곡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1단계가 끝나면 2단계로 진입하고 그다음에는 3단계로 가면 될 것이다.
왼쪽 길을 택하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거기로 연결될 것이고 오른쪽 길을 택하면 저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거기로 연결될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인생은 설계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물론 설계도의 청사진이 파랗게 펼쳐질 때가 있다.
너무나 깨끗해서 멋있어 보인다.
“이게 내 인생의 청사진이야!”라고 제시할 때 폼이 난다.
그런데 그 종이를 펼쳐보니 종이만 파랄뿐, 안의 그림은 흐릿하다.
선명한 게 하나도 없다.
선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그어져 있어야 하는데 모든 선이 다 끊긴 점선으로만 보인다.
인생 청사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지는 인생은 거의 없다.
대입 시험을 앞뒀을 때는 인생의 설계도가 분명해 보였다.
대학에서 이런 공부를 하면 졸업 후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래서 원하는 학교와 그 학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설계도대로 되지 않으면 인생이 망가지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설계도가 찢어져버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계도부터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너 그렇게 해서 뭐가 될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부터 해주겠다.
뭐가 되더라도 되니까 그건 걱정할 게 아니라고 말이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진다면 그게 사람이냐고 물어보겠다.
그건 사람을 닮은 로봇이라고 말해주겠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설계도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점과 선으로 연결된 것보다 조금 찌그러지고 삐져나오니까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중에 스트라빈스키라는 사람이 있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전망 좋은 법조인의 꿈을 꾸었다.
그 청사진처럼 법대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 그런데 음악이 끌렸다.
틈틈이 음악 공부도 해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하라는 인생살이의 법은 공부하지 않고 엉뚱한 음계의 법을 더 많이 공부했다.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했다.
음악가로서 성공하려면 좋은 선생님께 배워야 했다.
그래서 림스키 코르사코프라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대 최고의 러시아 작곡가였다.
그의 <왕벌의 비행>이란 피아노곡 하나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분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 스트라빈스키라는 애는 별로였나 보다.
눈길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았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스트라빈스키는 인생의 청사진을 또 그려야 할 판이었다.
맨날 청사진만 그리다 끝날 인생 같았다.
우연히 발레 감독인 세르게이 디아글레프를 만났다.
이 양반도 법학과에 들어갔다가 음악을 공부했다.
선생으로부터 음악을 때려치우라는 말을 듣고 공연 기획자로 방향을 튼 인물이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인생 둘이 만났으니 서로 통했나 보다.
어차피 청사진대로 안 되는 인생, 제대로 한 번 사고 쳐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불새>라는 발레곡이 나오게 되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난리가 났다.
스트라빈스키라는 새로운 음악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계획대로 안 되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자.
계획이란 게 안 될 확률이 더 높은 거다.
사실 계획대로 착착 되는 게 기적이다.
기적만 바라면서 살 수는 없다.
더글러스 맬록의 시처럼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언덕 위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떨기나무가 될 수 있다.
나무가 될 수 없다면 한 포기 풀이 될 수 있다.
어떤 게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냥 다 좋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곡 한번 들어보세요. 이런 곡만 만들면 반주자 죽습니다.
https://youtu.be/VS2i23k5AEM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 더글러스 맬록
언덕 위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떨기나무가 되어라.
그러나
시냇가의 제일 좋은 떨기나무가 되어라.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덤불이 되어라.
덤불이 될 수 없다면 한 포기 풀이 되어라.
그래서 어떤 고속도로든 더욱 즐겁게 만들어라.
모두가 다 선장이 될 수는 없는 법.
선원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고속도로가 될 수 없다면 오솔길이 되어라.
태양이 될 수 없다면 별이 되어라.
네가 이기고 지는 것은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이 되든 최고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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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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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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