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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안 되는 인생이다

by 박은석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보험사들의 말처럼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 계단 한 계단 차곡차곡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1단계가 끝나면 2단계로 진입하고 그다음에는 3단계로 가면 될 것이다.

왼쪽 길을 택하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거기로 연결될 것이고 오른쪽 길을 택하면 저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거기로 연결될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인생은 설계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물론 설계도의 청사진이 파랗게 펼쳐질 때가 있다.

너무나 깨끗해서 멋있어 보인다.

“이게 내 인생의 청사진이야!”라고 제시할 때 폼이 난다.

그런데 그 종이를 펼쳐보니 종이만 파랄뿐, 안의 그림은 흐릿하다.

선명한 게 하나도 없다.

선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그어져 있어야 하는데 모든 선이 다 끊긴 점선으로만 보인다.

인생 청사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지는 인생은 거의 없다.




대입 시험을 앞뒀을 때는 인생의 설계도가 분명해 보였다.

대학에서 이런 공부를 하면 졸업 후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래서 원하는 학교와 그 학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설계도대로 되지 않으면 인생이 망가지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설계도가 찢어져버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계도부터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너 그렇게 해서 뭐가 될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부터 해주겠다.

뭐가 되더라도 되니까 그건 걱정할 게 아니라고 말이다.

설계도대로 만들어진다면 그게 사람이냐고 물어보겠다.

그건 사람을 닮은 로봇이라고 말해주겠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설계도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점과 선으로 연결된 것보다 조금 찌그러지고 삐져나오니까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중에 스트라빈스키라는 사람이 있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전망 좋은 법조인의 꿈을 꾸었다.

그 청사진처럼 법대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아! 그런데 음악이 끌렸다.

틈틈이 음악 공부도 해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하라는 인생살이의 법은 공부하지 않고 엉뚱한 음계의 법을 더 많이 공부했다.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했다.


음악가로서 성공하려면 좋은 선생님께 배워야 했다.

그래서 림스키 코르사코프라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대 최고의 러시아 작곡가였다.

그의 <왕벌의 비행>이란 피아노곡 하나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분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 스트라빈스키라는 애는 별로였나 보다.

눈길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았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스트라빈스키는 인생의 청사진을 또 그려야 할 판이었다.

맨날 청사진만 그리다 끝날 인생 같았다.




우연히 발레 감독인 세르게이 디아글레프를 만났다.

이 양반도 법학과에 들어갔다가 음악을 공부했다.

선생으로부터 음악을 때려치우라는 말을 듣고 공연 기획자로 방향을 튼 인물이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인생 둘이 만났으니 서로 통했나 보다.

어차피 청사진대로 안 되는 인생, 제대로 한 번 사고 쳐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불새>라는 발레곡이 나오게 되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난리가 났다.

스트라빈스키라는 새로운 음악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계획대로 안 되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자.

계획이란 게 안 될 확률이 더 높은 거다.

사실 계획대로 착착 되는 게 기적이다.

기적만 바라면서 살 수는 없다.

더글러스 맬록의 시처럼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언덕 위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떨기나무가 될 수 있다.

나무가 될 수 없다면 한 포기 풀이 될 수 있다.

어떤 게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냥 다 좋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곡 한번 들어보세요. 이런 곡만 만들면 반주자 죽습니다.
https://youtu.be/VS2i23k5AEM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 더글러스 맬록


언덕 위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떨기나무가 되어라.

그러나

시냇가의 제일 좋은 떨기나무가 되어라.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덤불이 되어라.

덤불이 될 수 없다면 한 포기 풀이 되어라.

그래서 어떤 고속도로든 더욱 즐겁게 만들어라.


모두가 다 선장이 될 수는 없는 법.

선원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살아서 할 일은 있다.


고속도로가 될 수 없다면 오솔길이 되어라.

태양이 될 수 없다면 별이 되어라.

네가 이기고 지는 것은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이 되든 최고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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