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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by 박은석


가끔 생각해 본다.

절망과 희망이 줄다리기를 하면 어느 쪽이 이길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비슷한 상황에서 상반된 결과로 가게 된 여러 사람들을 봐 왔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면 올라오게 된다는 말로 희망을 붙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닥에 내려갔더니 그 아래 지하실이 있더라는 사람도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절망적인 상황인데 그 상황을 극복하여 유명세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누가 보더라도 아직 괜찮은데 스스로 상황을 종료시켜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사례들을 살펴보면 역시 상황이 큰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황을 바꾸는 절대적인 힘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 삶의 태도에서 솟아 나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긴 시간 동안 기다리며 바라보면 결국 태도가 상황을 바꾼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 즈음에 팝페라에 한참 동안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임형주라는 가수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는데 그 음색이 너무 고왔다.

그의 노래는 오페라와 팝송을 엮어서 부르는 팝페라였다.

어떤 가수들이 팝페라를 불렀는지, 어떤 노래들이 유명한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았고 한 곡씩 들어보았다.

그러던 중에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은 한 사람을 만났다.

이탈리아 사람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였다.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잘생겼다.

하긴 이탈리아에서는 길모퉁이만 돌아도 모델이 또박또박 걸어 나온다.

아! 그런데 이 보첼리라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이다.

그래서 무대로 나올 때는 반드시 누군가와 팔짱을 끼고 나온다.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얼굴을 부딪혀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세상이 깜깜해진 그의 인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시력을 잃은 것을 슬퍼하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고 고백을 했다.

일주일 동안은 극한 슬픔과 절망과 원망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런 시간이 없이 헤벌쭉 웃어대는 사람은 없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자 슬픔을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사고 후에 그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어느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공연 섭외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권투 경기장이었다.

1996년 11월 17일 독일의 챔피언 헨리 마스케의 은퇴경기에 앞서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권투 경기장에서 시각장애인이 팝페라 노래를 부른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기가 막혔다.

어쨌든 그는 그 제안을 수락하였고 그날 당대 최고의 여성 팝페라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링 위에 올랐다.




2만2천 명의 관중들은 의아해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보첼리의 눈에는 관중들이 들어올 리는 없었다.

반주에 맞춰서 사라 브라이트만이 한 소절을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보첼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면서 그 음악에 빨려 들어갔다.


그날 마스케의 은퇴경기 축하곡은 <Time to say Goodbye>였다.

보첼리의 인생 명곡이다.

그날의 경기에서 챔피언은 졌고 은퇴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경기는 오래 기억되지 않았다.

대신 그날의 노래는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Time to say Goodbye.”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

슬픔이여 안녕, 절망이여 안녕, 아픔이여 안녕이다.

그 후로 보첼리는 수많은 음악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절망과 희망이 줄다리기를 하면 당연히 희망이 이겨야 한다.

그러려면 절망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

그런 마음의 태도, 삶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아래 안들레아 보첼리와 사라 바르이트만의 듀엣 곡을 올려드립니다.
++권투 경기장에서의 공연은 영상 및 음향이 너무 안 좋아서 1997년 작품과 2015년 작품을 올립니다.
++시간은 흘렀어도 두 사람의 노래는 여전히 감동입니다.


https://youtu.be/g3ENX3aHlqU

https://youtu.be/4L_yCwFD6Jo

절망과 희망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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