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찾아온 손님

by 박은석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아직 두터운 옷을 입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계절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청하지 않은 손님처럼 날씨를 맞이하는 나는 어색하기만 하다.

날씨도 아마 나를 만나 어색할 것이다.

그래도 찾아오면 내가 반겨 맞을 줄 알았는데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안할까? 그러게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라도 미리 기별을 하고 찾아오는 게 예의인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왔으니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

서로 당황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움이 낯설지가 않다.

그래! 그렇다.

불쑥 고개를 내민 손님 때문에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국민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정확히 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건 내 기억력의 한계인가 보다.

고등학생 때까지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존함은 달달 외웠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그날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 식구는 많아서 늘 먹을 게 부족했다.

그날도 그랬다.

밥상에 올라온 반찬이 맘에 안 들어서 나는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점심때 먹은 게 너무 많아서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댔었다.

마치 누구 하나 밥 먹기를 포기하는 식구가 있기를 기대하기로 했던 것처럼 식구들은 그야말로 밥솥을 박박 긁어대다시피 해서 식사를 끝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은석이 부모님 계십니까?”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앗! 선생님이시다.’ 속에서 방망이질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이런 일이 없겠지만 그때는 교육청에서 시켰는지 담임선생님께서 학생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셨다.

길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면 담벼락으로 몸을 숨기곤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집에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어디 도망갈 데도 몸을 숨길 데도 없었다.




미리 알려줬으면 어떻게 준비라도 했을 텐데 불쑥 찾아오시니 난처하기 을 데 없었다.

나 못지않게 놀란 건 어머니셨다.

식사하시다가 말고 용수철처럼 일어서시더니만 현관문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선생님을 반겨 맞으셨다.

“아이고 선생님, 이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아! 식사하시던 중이셨군요.”

“선생님 시장하실 텐데 들어오셔서 식사하세요.”

순간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금방 솥단지까지 다 비웠는데 어머니는 선생님께 뭘 드리려고 저런 말씀을 하시나 했다.

보잘것없는 식단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기도 싫었다.


가정방문한다고 말씀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한마디 말씀도 안 하셨다가 왜 하필 이 시간에 찾아오셨는지 너무 야속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식사하세요. 나중에 다시 찾아올게요.”

그렇게 손사래를 치시고는 선생님은 급하게 다른 곳으로 가셨다.

다행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식사도 안 하고 가신다며 아쉬워하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서둘러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드렸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온 듯한 기분이었다.

만약 선생님께서 “그럴까요? 저도 한 그릇 주시겠어요?”하고 말씀하셨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셨을까?

어머니는 선생님께서 극구 사양하시고 그냥 가실 것을 짐작하고 계셨을까?

그렇게 우리 어머니께서 고단수이시셨던가?

프로 바둑 기사들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시는 혜안을 가지셨던가?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훨씬 넓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날 나는 선생님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미리 약속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면 서로가 당황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교훈은 밥 먹으라고 한다고 냉큼 받아먹지는 말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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