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고집이 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강씨는 강한 고집이고 김씨는 금쪽같은 고집이며 이씨는 이길 수 없는 고집이고 최씨는 최강 고집이다.
나와 같은 박씨는 박박 우기는 고집이다.
여간해서는 지지 않으려 하고 내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모난 고집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속으로 ‘아, 그거 나도 알아. 그런데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라고 한다.
반면에 누군가에게 내가 설명해야 할 때는 마치 그 분야의 전문가라도 된 것처럼 장황하게 설명한다.
가령 아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간다면 남한산성의 유래와 병자호란 당시의 인조임금과 신하들, 다산 정약용이 보수공사한 일과 남한산성의 남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성남’시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말들을 풀어낸다.
당연히 아이들은 싫어한다.
요즘은 고집의 정도가 심해져서 어지간한 사람들의 말은 흘려듣는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직 인생을 더 살아봐야 해!’라는 식의 은근히 그들을 누르려는 마음이 있다.
물론 겉으로는 활짝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칭찬 섞인 말을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고집이 센 지 잘 모를 것이다.
그저 나를 인심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아는 대로 바꿔가는 것은 다르다.
노력해도 잘 안 된다.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들을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바뀌기는 하지만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나 같은 사람들이 한순간 겸허해질 때가 있다.
나의 무식이 적나라하게 탄로 나는 때이다.
‘아! 내가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여겨질 때이다.
그런 때가 언제일까?
유명한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들을 때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좀체로 오지 않는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그중에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공자 같은 사람이나 그렇게 보는 것이지 나 같은 사람은 세 사람이 걸어가면 한 명은 형님이고 한 명은 동생이다.
아니면 친구든가.
선생님을 만나는 것 말고 나 같은 고집쟁이가 자기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 또 있다.
그건 책을 읽는 시간이다.
책 속을 헤매다 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이 안 될 때가 있다.
‘이것도 모르고 있었나? 그동안 헛살았네!’라며 나 자신을 꾸짖을 때도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나 표현, 법칙들이 나오면 마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니체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은 도끼다!”라고.
도끼가 장작을 쪼개듯이 책은 내 생각과 사상을 쪼개버린다.
사람들은 책을 한 권밖에 안 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한다.
그 한 권의 책이 세상 지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돌려서 생각해보면 그 한 권의 책이 그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책의 내용을 계속 들먹이는 것 아닐까?
그 사람도 그 책을 읽을 때 머리를 도끼로 한 대 얻어맞았을 것이다.
얼마나 세게 얻어맞았으면 고집불통인 자기 생각을 다 내려놓고 책의 내용을 따랐을까?
예전에는 말 안 듣는 애들은 한 대 얻어맞아야 한다고들 했다.
제대로 작동을 못 하는 텔레비전도 한 대 얻어맞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 잘 들었고 끊길 것 같았던 화면도 잘 나왔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고집불통인 내가 누구에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지 않고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책이라는 도끼가 내 똥고집을 산산조각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