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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4. 2020

수학공부의 즐거움

지금은 까마득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에 제일 재미있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학을 좋아했다고 하면 별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좋아하는 과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수학을 잘 해서 좋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반 학우들 사이에 수학공부에 대한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 아마 큰 영향이었을 것이다. 인문계고등학교 문과반 학생들이 수학을 좋아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학선생님께서 칠판에 문제풀이를 해 주시려고 돌아서시면 학생들의 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눈은 딴 데로 가 있는 것이 대부분의 교실 풍경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그때 우리의 눈은 책상 아래 펼쳐놓은 수학문제집에 가 있었다.     


당시는 학력고사 시대였는데 문과의 경우 전체 320점 중에서 국어는 1,2 합쳐서 75점, 영어는 60점, 수학은 55점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이과는 국어가 55점이고 수학이 1,2로 나뉘어 75점이었다. 그러니까 국어를 잘 하면 문과, 수학을 잘 하면 이과로 흔히 진로를 정하곤 하였다. 그만큼 문과에서는 수학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다. 잘 찍어서 점수가 잘 나오면 좋고 점수가 별로 안 나오더라도 국어에서 만회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공부란 것이 어디 그런가? 모든 학문은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어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니까 국어를 잘 하는 친구는 대체로 수학도 잘 하였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학문제 하나 차이가 등수를 좌우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수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던 것 같다.     


수학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로, 이처럼 반 분위기가 수학을 즐기다 보니 그 분위기에 따라 나도 수학이 좋아졌다. 둘째로, 수학문제를 많이 풀다보니까 수학이 좋아졌다. 정답을 많이 맞췄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많은 문제를 풀었다. 때로는 정답지를 보면서 따라 풀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비슷한 문제는 쉽게 맞출 수 있었다. 셋째로, 수학공부의 목표를 달성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고3때는 하루에 모나미153 볼펜 한 자루를 쓰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었다. 누런 16절지(A4용지보다 조금 작은 용지)를 앞뒤로 8장을 쓰면 잉크가 똑 떨어졌다. 그렇게 하루에 볼펜 한 자루 쓰는 뿌듯함으로 문제를 풀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넷째로, 수학은 국어처럼 아리송하지 않고 언제나 분명한 정답이 있었다. 그게 좋았다. 그러다 보니 <수학의 정석>을 비롯하여 매월 한 권씩의 문제집을 풀어가는 즐거움을 누렸다.     


가끔씩 선생님은 우리가 졸업을 하면 더 이상 수학을 쓸 일은 없다고 하셨다. 하긴 일상생활에서 미분이나 적분을 사용할 일은 없다. 방정식도 필요 없고 그냥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알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공부를 꼭 어디다가 쓸 용도로만 한다면 모든 학문이 다 마찬가지다. 달달 외웠던 훈민정음 해례본, 용비어천가의 문장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공부는 마치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맛이 있든 없든 골고루 먹으면 그것이 우리 몸의 각 부분에 적절히 쓰인다. 미친 듯이 수학을 공부했었던 경험 때문에 끙끙대며 고장난 물건들을 고치게도 되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부여잡고 긴 시간 씨름도 하게 되었다. 분명히 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수학책을 보지는 않지만 수학 때문에 인생공부의 내공이 쌓였다. 수학은 참 즐거운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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