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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7. 2021

독서는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다


나는 문학도라 생각했었다.

분위기에 맞춰 폼을 잡고 책 한 권 정도는 끼고 다니는 모습을 꿈꿨다.

언젠가 내 이름을 새긴 책 한 권은 내리라 마음을 먹기도 했다.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나의 주된 독서 영역인 줄 알았다.

대학에서 나를 가르쳐주신 교수님들도 우리를 국문학도라고 부르셨다.

한국어교육과니까 교육학도라고 할 만했는데 그러지 않으셨다.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계속 듣는 말에 중독이 되었는지 나도 스스로를 문학도라고 생각했다.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작업이라 생각했다.

그러려면 좋은 어휘들을 찾아야 하고 그 어휘들을 잘 연결하여 감동적인 구성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딱딱하고 기계적인 내용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서점에서 그런 책이 있는 쪽은 내가 앉을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내가 점점 그쪽으로 돌아앉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바뀌었다.




문학이란 사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분위기도 감정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문학이다.

사람을 알아가려면 문학과 역사와 철학 같은 것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

흔히 인문학을 문사철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알아가려면 문학과 역사와 철학 말고도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에게는 온갖 복잡한 요소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복잡한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다.

인류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살 때는 짐승과 잘 싸우는 기술이 최고였다.

그 기술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살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냥하는 기술로는 일 년 내내 먹고살 수 없었다.

좁은 땅에서 많은 양의 곡식을 얻어야 했고 그것을 저장해서 다음 추수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나눠먹어야 했다.

이제는 머리를 써야 했다.




맹수들과 싸웠던 수렵채집사회와는 달리 농경사회에서는 사람들과 많이 싸웠다.

짐승들과의 싸움에서는 한 가지 기술만 있어도 이길 수 있었지만 사람과의 싸움에서는 머리를 잘 써야 했다.

싸움기술이 좋고 숫자가 많다고 해서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형과 날씨를 살피고 군사들이 진을 친 형태를 파악해서 전략을 짜는 게 더 중요했다.

거기에다가 사람의 심리를 움직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말 한마디로 승리를 얻기도 하고 패전하기도 했다.

손에 익숙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사람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직을 잘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들을 하나씩 축적해나가면서 문학이 창작되었고 역사가 기록되었고 철학이 나타났다.

인문학이 세상을 평정하는 듯한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단순하지가 않다.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다시 기술력이 중요하게 부상하였다.

손재주만 있으면 평생 걱정이 없을 듯했다.

문사철 같은 것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또 정보화사회가 되니까 문사철이 중요한다고 한다.

결국은 문사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난리다.

애초부터 학문에 선을 그은 게 잘못이다.

중요한 공부가 따로 있고 중요하지 않은 공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은 온통 공부거리로 가득 차 있다.

눈에 보이면 알아보아야 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공부해야 한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미생물이든 우주이든, 우리의 공부 영역에는 한계를 두어선 안 된다.

책 읽기도 그렇게 방향을 잡아가면 좋다.

독서의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다.

눈에 꽂히는 책이 있으면 꺼내고 마음이 동하면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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