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Dec 02. 2021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 버스카글리아입니다


한창 연애감정이 꿈틀대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교회 선생님 집에 갔는데 책장에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사랑’이란 두 글자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때였다.

그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그때 연애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몰래 책을 한 번 쓱 훑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랑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책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었다.

그런데 그 책이 잊을 만하면 내 눈에 띄곤 했다.

책 디자인도 별로이고 내용도 딱딱할 것 같았다.

저자인 버스카글리아라는 인물은 이름만 들어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느낌상 여자 같았다.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계속 눈앞에 보이니까 아예 한 번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알 수 있고 책은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사춘기 청소년이 읽기에는 재미없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육학 교수였다.

남자이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공립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그전에는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 가족이었다.

그는 잘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버스카글리아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려고 하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쳤다.

사랑을 하는 것도 공부해야 알 수 있냐는 비아냥들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과연 그의 강의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인기가 폭발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강의에 열광했다.

그에게 ‘사랑학 교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의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읽다 보면 그가 이탈리아인의 가족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 수 있다.

대가족이 우르르 모여 사는 분위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별 인사를 하느라 한 시간 넘게 소요되는 시간, 영어를 잘 못해도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곡들을 줄줄 외울 수 있다는 뿌듯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교육학 박사이지만 교육이 학생들에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르쳤어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못했다고 했다.

교육이 가르치지 못한 그 중요한 것은 ‘인생’이다.

인생은 꼭 배워야 하는데 인생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직접 인생을 가르치기로 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책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랑의 방법 중의 하나는 충분한 스킨십이다.

만나면 껴안아주고 입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그 단순한 행동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다.




사랑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장소는 가정이다.

그리고 사랑을 가장 많이 베풀 수 있는 장소도 가정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 으슥한 곳에 숨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아무도 숨지 않는다.

숨을 필요도 없다.

가정은 식구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잃은 아버지가 다시 가문을 일으키자고 어린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이 고갈된 부모님을 도와서 어린 나이에 잡지를 판매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폭삭 망해도 텃밭이 남아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야채들로 매일 샐러드를 만들어 먹자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사랑 가득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환불당한 영수증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에 불과하다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은 오직 오늘, 그리고 우리 가족뿐이라고 말했던 버스카글리아.

그를 소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잊어버리지만 매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