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연애감정이 꿈틀대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교회 선생님 집에 갔는데 책장에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사랑’이란 두 글자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때였다.
그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그때 연애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몰래 책을 한 번 쓱 훑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랑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책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었다.
그런데 그 책이 잊을 만하면 내 눈에 띄곤 했다.
책 디자인도 별로이고 내용도 딱딱할 것 같았다.
저자인 버스카글리아라는 인물은 이름만 들어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느낌상 여자 같았다.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계속 눈앞에 보이니까 아예 한 번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알 수 있고 책은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사춘기 청소년이 읽기에는 재미없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육학 교수였다.
남자이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공립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그전에는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 가족이었다.
그는 잘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버스카글리아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려고 하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쳤다.
사랑을 하는 것도 공부해야 알 수 있냐는 비아냥들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과연 그의 강의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인기가 폭발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강의에 열광했다.
그에게 ‘사랑학 교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의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읽다 보면 그가 이탈리아인의 가족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 수 있다.
대가족이 우르르 모여 사는 분위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별 인사를 하느라 한 시간 넘게 소요되는 시간, 영어를 잘 못해도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곡들을 줄줄 외울 수 있다는 뿌듯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교육학 박사이지만 교육이 학생들에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르쳤어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지 못했다고 했다.
교육이 가르치지 못한 그 중요한 것은 ‘인생’이다.
인생은 꼭 배워야 하는데 인생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직접 인생을 가르치기로 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그렇게 해서 태어난 책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랑의 방법 중의 하나는 충분한 스킨십이다.
만나면 껴안아주고 입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그 단순한 행동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다.
사랑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장소는 가정이다.
그리고 사랑을 가장 많이 베풀 수 있는 장소도 가정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 으슥한 곳에 숨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아무도 숨지 않는다.
숨을 필요도 없다.
가정은 식구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잃은 아버지가 다시 가문을 일으키자고 어린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이 고갈된 부모님을 도와서 어린 나이에 잡지를 판매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폭삭 망해도 텃밭이 남아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야채들로 매일 샐러드를 만들어 먹자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사랑 가득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환불당한 영수증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에 불과하다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은 오직 오늘, 그리고 우리 가족뿐이라고 말했던 버스카글리아.
그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