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바통을 주고받는 이어달리기와 같다

by 박은석


이어달리기를 할 때 빨리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통을 주고받는 일이다.

이전 주자는 바통을 잘 건네주고 다음 주자는 잘 건네받아야 한다.

주고받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주고받는 게 참 어렵다.

이전 주자는 벌써 운동장을 돌았기 때문에 힘이 빠진 상태다.

지금 힘이 넘치는 다음 주자가 빨리 받으면 그만큼 좋다.

하지만 다음 주자라고 해서 무조건 바통을 빨리 받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바통을 받으면 달려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

아직 몸이 예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마중 나가서 천천히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예열해야 한다.

그러다가 이전 주자가 그 자리까지 오면 그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서 앞으로 뛰어가야 한다.

너무 빨라도 안 된다.

딱 그만큼이어야 한다.

그리고 바통을 넘겨받는 순간에 그 바통을 꽉 움켜잡고 총알처럼 뛰쳐나가야 한다.




바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는 20미터이다.

법으로 그 거리를 정해놓았기에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바통을 건네주고 건네받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할 수 있다.

고작 막대기 하나 움켜쥐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어달리기의 규칙은 바통을 쥐고 뛰는 것이다.

바통이 없으면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기록을 인정받지 못한다.

바통을 땅에 떨어뜨리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바통을 건네주는 구간 20m 앞에서 받아도 안 되고 20m를 넘어서 받아도 안 된다.

그 선을 지켜야 한다.

급한 마음에 다음 주자가 빨리 뛰어가면 이전 주자가 쫓아오지 못한다.

바통을 받으려고 다음 주자가 걸음을 잠깐 멈추면 뛰어오던 이전 주자와 몸이 엉킬 수 있다.

이래저래 바통 교체 구간에서 두 선수가 서로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바통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것이 이어달리기를 잘 하는 팀의 노하우이며 실력이다.




인생은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한 해에서 또 한 해로 인생의 바통을 넘겨주고 넘겨받고 있다.

어떤 해는 정말 잘 뛰었고 어떤 해는 기록이 별로 좋지 못했다.

기록이 좋았던 때는 바통을 넘기면서 뿌듯하고 흐뭇했다.

반면에 기록이 안 좋았던 때는 바통을 넘기면서 아쉬움만 가득했다.

그저 다음 주자가 잘 뛰어주기를 바라는 심정처럼 다음 해에 잘 하리라 기대하고 바랐다.

이어달리기 경기가 끝나면 몇 번째 주자의 기록이 얼마였느냐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최종 기록이 얼마였는지만 남는다.

내 인생도 그럴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 서른여섯 번째 해의 기록이 얼마였는지 마흔다섯 번째 해는 잘 뛰었는지 찾아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뭉뚱그려서 한 마디로 내 인생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이다.

한 해 한 해의 경기가 모여서 '인생'이라는 하나의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통을 잘 주고받아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바통을 주고받는다.

먹는 것도, 이야기도, 지식과 정보도, 주고받는 모든 게 다 바통이다.

아기는 엄마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으려는 듯이 팔을 뻗는다.

그러면 엄마는 아기의 손을 잡아준다.

그렇게 바통 터치가 이루어진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면 자기와 닮은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기에게 자기가 엄마에게서 받았던 것처럼 또 바통을 넘겨준다.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그리고 손녀에게로 그렇게 바통이 이어진다.

그렇게 인생이 되고 가문이 되고 문명이 된다.

이어받은 바통이 별로였다면 내가 잘 뛰면 된다.

넘겨줄 바통이 별로라면 다음 주자가 잘 뛰기를 응원하면 된다.

바통만 떨어뜨리지 말라고 격려하면 된다.

어차피 1등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하는 게 목표였다.

이제 한 해의 바통을 다음 해로 넘겨줄 때가 되었다.

한 해 동안 잘 뛰었다.

잘 넘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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