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맨몸뚱아리에 뭔가 숨겨서 나오는 것 같다.
갓난아기를 보면 요 녀석이 뭔가 숨기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생각해보니 눈물 한 바가지를 숨기고 있었다.
갓난아기의 몸이 꼭 한 바가지 정도 크기니까 그 녀석이 그 몸에 눈물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쏟아낼 눈물의 양이 그만큼이니까 아무 때나 함부로 흘리지는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응애”하며 울어재끼는데 자세히 보면 목소리는 우렁차지만 눈물은 없다.
마른 눈물이라고 말을 붙이는데 갓 태어난 녀석이 벌써부터 사람을 조종하는 법을 알고 있다.
사람은 눈물에 약하다.
눈물은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한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 울음이 들통날 때쯤 되면 이번에는 진짜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보는 순간 엄마아빠는 안절부절이다.
큰일난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한다.
눈물 한 방울로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법을 터득한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꼭 중요할 때만 한 방울씩 내비친다.
눈물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마음을 균형 잡게 해주는 도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눈물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눈물 한 방울이면 배고픔도 해결하고 슬픔도 견딜 수 있다.
눈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이면서 자기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무게추가 된다.
그래서 슬픈 일을 당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을 극복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면서 심장이 터지는 것을 막아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내가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고 남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내가 우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남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아버지는 나에게 사내대장부는 함부로 우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남자는 평생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 말도 하셨다.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한 번, 나라가 망할 때인가 그때 한 번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면서 버텼었다.
그래도 눈물이 나오면 나는 사내자식이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바늘로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온다는 사람이 있다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누구나 태어날 때 눈물 한 바가지 숨겨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셨지만 아버지는 내가 보지 않는 데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셨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까 그때의 아버지의 눈물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을 참고 참다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그 눈물 왜 도로 가지고 왔느냐고 하실지 모른다.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까.
인생의 희로애락에는 반드시 눈물이 스며들어 있다.
슬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울라고 해야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때도 울라고 해야 한다.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 하는 사람에는 빨리 울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좋아서 죽어버릴지 모른다.
큰 일을 당하면 눈물을 아끼지 말고 크게 울어야 한다.
살아갈 일이 큰일이라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크게 울어야 한다.
크게 울어야 마음이 커진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쁜 일이 생기면 옆 사람과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야 한다.
그래야 참고 견뎠던 모든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
곽재구 시인은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에서 “모든 기쁨은 눈물 근처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눈물은 흘러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 스며들어 거름이 된다.
우리의 삶은 그 눈물을 머금고 영글어간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눈물이다.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