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목동병원 남궁인 교수의 칼럼을 읽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난 연말에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 글이었다.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봉사와 나눔 활동을 펼친 단체와 개인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있었다.
아동보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나 월드비전 같은 기관들과 적십자, 구세군의 대표들도 있었고 남궁인 교수처럼 홍보대사들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익숙한 얼굴의 연예인들도 있었다.
어쩌면 연예인들은 얼굴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큰 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봉사와 나눔이라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헌혈 한 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눔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그 일인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하면 어려운 일이 된다.
마음은 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정말로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분들을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할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인 교수는 그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서로 안면이 있어서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남들처럼 깔끔하게 격식을 차려입고 오지도 않으셨다.
높은 양반들을 만나는 자리에 후줄근하게 평상복 차림 그대로 나오신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와서는 안 되는데 억지로 끌려오신 것처럼 보이는 분이 계셨다.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그 자리에 가셨을까 궁금했다.
90세가 넘으신 그 할머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고액 기부자이셨다.
마침 관련 동영상이 있다기에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칼럼으로도 충격을 받았고 영상으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는 남한산성 근처에서 김밥집을 운영하시는데 자신이 평생 장사하면서 번 돈과 집과 땅을 모두 기부하셨다고 한다.
그 금액이 무려 6억 원이었다.
그리고서 당신은 보증금 2천만 원짜리 월세방에 사셨다고 했다.
최근에는 몸이 불편해지자 그 보증금까지 기증하시고는 자신이 기부해서 복지시설이 된 집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40년 전에는 길에 버려진 발달장애인을 데려와서 지금까지 그 사람을 자식처럼 돌보며 있다고 했다.
할머니에 대한 소개를 읽는데 뭐라고 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함께 온갖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가끔 매스컴에서 남에게 선행을 베푼 분들에 대한 뉴스가 소개될 때마다 대단한 분들이시라며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는데 이 할머니는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남궁인 교수는 이 할머니를 성자라고 표현하였다.
“저는 가난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팠습니다.
배가 고파서 힘들었습니다.
열 살부터 경성역에 나가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먹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주었습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십이 넘게 다 주면서 살다가 팔자에 없는 청와대 초청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세상은 할머니를 버렸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 아슬아슬한 세상이 아직껏 견디고 있는 이유는 박춘자 할머니 같은 분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동영상 링크입니다. 청와대를 좋아하시든 좋아하지 않으시든 할머니 한 번 만나보세요.
https://youtu.be/bKXmisaUSCo
++남궁인 교수 칼럼 링크입니다. 페이스북으로 연결됩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1302802436/posts/4720436228009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