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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하늘은 나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by
박은석
Feb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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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다.
나뭇가지에도 자동차 위에도 길바닥에도 족히 10센티미터는 넘을 만큼의 눈이 쌓였다.
지난밤까지만 해도 칙칙한 세상이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이 환하게 달라졌다.
이 하얀색 바탕 위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일단 발 한 발자국을 찍어봤다.
눈 위에 찍힌 첫 발자국이다.
약간 흥분이 된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간 닐 암스트롱도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얀 눈은 우리에게 그런 좋은 흥분감을 선사한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하얀 도화지를 받으면 그 위에 아무것이나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눈 쌓인 날은 아무것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얀 눈은 아무나 맞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디에서나 눈이 내리는 것도 아니다.
열대지방에 있는 사람에게 하얀 눈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안다.
“그게 뭔데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눈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이다.
어쩌면 세계 80억 인구 중의 절반은 올해 들어서 눈 한 번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얀 눈은 오매불망 기다린다고 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지도 않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날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다.
우리가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써도 세상을 바꾸기가 어렵다.
그런데 눈은 너무나 쉽게 세상을 바꿔버린다.
자고 일어났더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얀 눈이 수북이 덮인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그래서 눈 쌓인 날에는 뭔가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눈 위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도 보고 눈을 굴려 눈사람도 만들어본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생 기념사진도 찍어보고 눈 뭉치를 만들어 눈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도 저도 할 게 없으면 빗자루를 들고나가 쌓인 눈이라도 치운다.
그것도 재빨리 해야 한다.
눈 위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빨리 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나중에 해야지 생각하면 눈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벌써 녹아버린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기회’라는 것과 같다.
앞에서는 머리가 길어서 잡을 수 있는데 뒤돌아서면 뒤에는 머리가 없어서 잡을 수 없는 것 말이다.
눈 쌓인 세상은 분명 우리에게 기회로 찾아온다.
빨리 그 기회를 잡지 않으면 금세 그 기회는 달아나고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된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일어나 눈 덮인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면 하얀 세상은 차츰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자동차가 몇 대 지나가면 그 반가웠던 눈들이 보기 싫은 흉물로 변해간다.
길가 한편에 수북이 쌓여서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눈을 보면 흰색과 검은색은 원래 같은 색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 새하얀 세상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너무 황홀했는데 그 세상 속을 내가 오고 가면서 한 발자국씩 오염시켰나 보다.
문득 눈을 들어서 살펴보니 온 세상이 다시 시커메졌다.
나는 눈 덮인 세상을 더 밝고 환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하는 일마다 하얀 눈을 검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하였다.
손만 대면 이전보다 안 좋아지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나에게 있나 보다.
그래도 하늘은 나에게 기죽지 말라고 또다시 눈을 내려준다.
다시 도전하라고 기회를 준다.
물론 그 기회를 사용해서 나는 하얀 세상을 또 한 번 검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나에게 다시 또다시 기회를 준다.
하얀 눈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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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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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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