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가족 생각을 한다.
친구를 좋아해서 강남까지 따라간다는 사람도 고향에 내려가면 어릴 적 친구를 만나기보다 가족들을 먼저 챙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였다고 하지만 가족이 있어야 내가 있다.
사람은 가족 안에서 태어나서 가족 안에서 살아가며 가족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나의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가족이기에 기왕이면 가족이 잘 되기를 바란다.
일단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서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할아버지 대에서 아버지 대로 그리고 아들 대에 이르기까지 몇 세대를 이어가면 사람들은 그 가정을 명문 가문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명문 가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대를 이어가며 계속 선한 영향력을 쌓아가야만 이루어진다.
한번 명문 반열에 이른 가문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 가정에 흐르는 전통이 있고 여러 겹으로 둘러싼 보호막이 있어서 웬만한 어려움은 훌훌 털어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어른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가문을 세우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가문이 몰락하는 것은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국가와 가문의 흥망성쇠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쌓인 지혜들이 전해지고 전해지면서 그러한 가르침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당나라 때 유변(柳玭)이라는 사람은 자기 후손들이 가문을 잘 지켜나갈 것을 바라면서 직접 가훈을 지어 가르쳤다.
그 내용이 유씨가훈(柳氏家訓)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왔는데 주희와 유청지가 발췌하여 <소학(小學)>에 실었다.
우리 조상들은 글 읽기를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거의 의무적으로 <소학>을 배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유 씨 가훈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유변은 유씨가훈을 통해서 자신과 집안을 망치는 잘못이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를 잘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첫째는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담박한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다.
둘째는 유학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도 않는다.
셋째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농담하기만 즐기고 점점 사악한 행실에 빠질 것이다.
넷째는 노는 것을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이다.
이런 한량은 마음이 곧 황폐해지며 잘못을 깨닫지도 못한다.
다섯째는 높은 벼슬을 얻으려고 요직에 있는 사람에게 아첨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노와 시기를 받게 될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가르침이니까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이었으면 주자가 <소학>에 이 내용을 넣었겠는가?
다산 정약용도 말년에는 소학 공부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다산 같은 천재는 어려서부터 소학을 달달 외웠을 것 같은데 노년에 다시 차근차근 공부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다가 이런 글귀들이 나오면 곱게 적어서 자기 아들들과 제자들에게 전하였을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나도 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
자기들도 인생에 보람을 느끼고 저 아이들을 통해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소망한다.
내 아이들이 가정을 일구고 또 내 아이의 아이들도 가정을 일구어서 우리 가정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명문 가문이 되기를 원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난감했는데 유씨가훈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