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얼마 안 남았던 나이에 책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것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도 싶었고 뭔가 새로운 것을 얻고도 싶었다.
마음을 다스릴 힘도 필요했고 부족한 지식도 채우고 싶었다.
이러저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책 읽기가 안성맞춤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말을 했다.
1년에 200권 독파하는 게 목표라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한 권이라도 깊이 있게 제대로 읽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많이 읽으라고 격려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곁에서 묵묵히 지켜본 아내가 가장 큰 지원군이었다.
1년에 200권을 읽으려면 1주일에 4권씩 한 달에 17권을 독파해야 한다.
얇은 책만 골라 읽어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현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목표를 수정할까 하는 고민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도전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고 김대중 대통령이다.
한때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 맹활약을 했던 김규태 선생이 언젠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자택에서 무려 2만 권이 책이 소장되어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다.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이규태 씨도 그 많은 책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자기 집에도 1만 권이 넘는 책이 있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일화를 읽으면서 나는 2만 권의 책을 제목만이라도 읽어보려면 몇 시간이 들까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분이 언제 그런 책들을 구입하고 읽어보았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쁜 분도 이런 엄청난 일을 했다면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 1년에 200권을 읽는 것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책 읽기에 도전을 준 또 한 사람은 일본의 작가 겸 배우이자 연출자인 나카타니 아키히로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20대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마흔 살이 되면 영화감독이 되고 또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이 너무 충격적이다.
그는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려면 많은 영화를 봐야 한다고 믿었고 최고의 작가가 되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와세다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한 그 날부터 시작된 그의 목표는 하루 3편의 영화를 보고 하루 3권의 책을 읽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그는 4천 권의 책을 독파했고 4천 편째의 영화를 시청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미친 듯이 대학시절을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절판이 되었지만 그가 쓴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등 50대까지 10년의 주기로 펴낸 책들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꿈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꿈이든 당장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이든 꿈 하나 정도는 마음에 늘 넣어놓고 지낸다.
“나에게는 꿈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간절히 바라는 것 한 가지는 분명히 있다.
당장 밥 한 끼 먹고 싶은 꿈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행운이다.
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꿈은 내가 노력할 때 얻을 수 있다.
서점을 싹쓸이해서 2만 권의 책을 구입한 재벌에게는 사람들이 놀라지도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아키히로에게 내가 놀란 것은 그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갔기 때문이다.
한 권씩 읽다 보니 대학 4년 동안에 4천 권을 읽게 되었고 한 권씩 모으다 보니 2만 권을 모으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나의 격려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