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인들의 1년 독서량이 평균 2권 정도라고 한다.
물론 많이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을 내면 2권을 밑도는 수치가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선비들은 늘 책을 읽었을 것 같다.
그때는 양반이 아니면 책 읽는 게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상민들은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 개화기에 이르면 조금이라도 기회가 되면 책을 읽으려고 했다.
신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들을 개화시키려고 했다.
개화하려면 무엇보다도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아야 했다.
그래서 전국에 우후죽순 격으로 학교들이 세워졌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시작으로 하여 서양의 유명한 책들이 속속들이 번역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여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교회에서는 밤 시간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한글을 깨쳐주는 야학을 운영하였다.
심훈의 <상록수>를 보면 야학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의 바람대로 가갸거겨 한글을 깨치는 것은 너무 쉬웠다.
한글을 깨치는 순간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이것을 재빨리 파악하여서 교회에서 한글을 가르쳐주고 글을 깨치면 곧바로 성경을 읽게 했다.
성경을 한 번 읽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참 유치한 방법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러한 장치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더욱 빨리 글을 배워 책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책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집안이 아니면 책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책 한 권을 구입하면 그 책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아이들은 한 번 빌려온 책을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문고판으로 편찬된 세계문학전집은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였다.
책에 관심이 있었던 부모들은 큰소리로 월부 책장수를 불러들였고 그렇게 한 세트를 구입한 집은 동네 아이들의 도서관이 되기도 했다.
수완이 좋은 장사꾼들은 리어카를 개조해서 이동식 책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 리어카가 골목에 나타나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이 책 한 권만 빌려달라며 엄마를 졸라댔을 것이다.
사춘기 소녀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며 하이틴 로맨스에 빠져들었고 사춘기 남자들은 조심스럽게 빨간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선생님들은 청춘 시절에 읽은 책이 평생을 간다며 책을 읽으라고 했지만 정작 공부 열심히 하라며 책 읽을 시간은 주지 않으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청춘의 때에 책을 읽으려면 수업시간에 몰래 책상 밑에 펼치고 읽어야 했다.
그때 그렇게 읽은 책들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도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했던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 꼭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텔레비전에서도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터넷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다.
굳이 책이 필요 없다고 여길 만하다.
애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등학생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히고 그다음부터는 대학을 위한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유치원 때나 초등학생 때는 엄청 책을 많이 읽히다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못 읽게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공부는 언제 할 거냐며 책은 대학에 가서 읽으라고 한다.
중고등학생 때 책을 안 읽은 아이가 대학에 가면 책을 읽을까?
그때가 되면 더 바쁘다고 할 텐데 말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이 1년에 2권 정도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가 잘 아는 말을 외쳐 본다.
“책 속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