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놓지 말아야 할 일

by 박은석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왕후장상의 집에 태어났더라도 주어진 것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요절하는 경우도 있고 산골 깊숙한 곳에 숨어 살던 나무꾼이 왕이 되기도 한다.

궁예는 신라의 왕가에서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때 버려졌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찰에 숨어 살다가 장성한 후에는 후삼국 시대의 강자가 되었다.

세종대왕의 다섯 번째 아들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결국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철종 임금은 강화도에서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되었다.

신데렐라나 콩쥐의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기적처럼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

어떤 사람은 치밀하게 준비해서 그런 기회를 잡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얻어 인생이 확 바뀌기도 한다.

내 인생도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




1928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베르나르 뷔페라는 인물이 있다.

이름에서부터 뷔페식당을 떠오르게 하듯이 이 사람의 인생은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버무려져 있다.

가정에는 신경 쓰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어머니 사이에서 컸다.

소심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열다섯 살 때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교육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대가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문제아로 낙인찍혀 인생 종 칠 것 같았는데 선생님 한 분이 그를 예술학교에 추천해주었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미술학교였다.

그림 한 점을 제출하고 입학 면접을 받으려고 했는데 열다섯 살은 너무 어려서 입학할 수 없다고 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이라도 한번 보자고 했던 심사관들은 너무나 당황했다.

그의 그림이 천재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심사관들은 학교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그를 입학시켰다.




뷔페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물감을 살 돈이 없어서 쩔쩔맬 때도 많았다.

그래서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채색이 짙은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물감을 살짝 묻힌 후에 날카로운 물건으로 그 채색된 부분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화가의 삶을 계속 살 수 있도록 후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는 “오직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도화지에 채색된 물감을 긁어낼 때 뷔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가난한 환경을 탓했을까?

1,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을 원망했을까?

자기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상처들을 하나씩 드러내는 심정으로 긁어갔을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뷔페의 그림이 자신들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뷔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물론 뷔페의 화가 인생에도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예술계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매스컴으로부터 온갖 비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비난이 자신을 더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노년에 파킨슨 씨 병을 얻고 손목 골절을 당한 후에도 그는 “그림은 내 목숨과도 같다. 내가 그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뷔페는 가난하게 성장했지만 후에 호화로운 삶을 살기도 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했든지 간에 뷔페는 그림 그리는 일을 쉬지 않았다.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놓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뷔페에게는 그게 그림 그리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그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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