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by 박은석


어렸을 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통령이라고도 했다가 육군 대장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허허” 웃으시곤 하셨다.

4학년 때인가 현미경으로 양파 껍질을 살펴보는 시간이 있었다.

마침 집에 현미경이 있었기에 양파 껍질뿐만 아니라 마당에 있는 나뭇잎과 풀잎들을 죄다 따서 살펴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다.

5학년 때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서 나도 탐정이 되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그 위인들처럼 뭔가 똑 부러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는 항상 내가 처한 상황보 직급이 더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꿈꾸던 것들을 얻은 사람들을 보니 그렇게 멋있게만 보이지 않았다.

다 가진 것 같은데 왠지 불쌍해 보였다.




“나에게 좋은 친구가 있는데 말야, 그 친구가 대통령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OO기업의 회장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물론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그런 말을 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세상에서 산다.

유명한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와 말 한번 섞어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내가 울적할 때 부를 수도 없고 내가 기쁠 때 그 소식을 전할 수도 없다.

그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가 크게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에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 내가 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냥 괜찮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그냥 좋고 함께 없으면 그냥 아쉬운 사람이다.

특별한 냄새와 색채를 지니지 않아도 괜찮다.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심심할 때면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회적인 직급이 높지 않아도 괜찮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풍성하게 만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단출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형편이 좋아졌다며 바쁘다고 하지 않는 사람, 형편이 나빠졌다며 숨어버리지 않는 사람.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수북해지더라도 내 이름 세 글자를 반갑게 불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나에게 가장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권혜진 시인은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라는 시에서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라고 노래했다.

문득 그 모습이 떠올려지면 빙그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면 누가 뭐래도 분명 성공한 사람이다.

인생 성공이 다른 게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도, 육군 대장이 되고 싶었던 것도,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내 나름으로는 그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알겠다.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면 대통령이 아니어도, 육군 대장이 아니어도, 과학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 권혜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깊이의 잣대가 필요 없는 가슴

넓이의 헤아림이 필요 없는 마음

자신을 투영시킬 맑은 눈을 가진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삶이 버거워 휘청거릴 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마음이 우울할 때 마주 앉아

나누는 차 한 잔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고

하늘빛이 우울하여 몹시도 허탈한 날

조용한 음악 한 곡 마주 들으며

눈처럼 하얀 웃음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내 모습 전부를 보여주고 돌아서서

후회라는 단어 떠올리지 않아도 될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일상에서 문득 그 모습 떠올려지면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빙그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에게

참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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