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이란 게 상황에 따라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그 상황이란 것은 또 나의 소유가 얼마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뭐든지 좀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마음도 그와 비례하여 높아진다.
반면에 가진 게 없다면 마음도 낮아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좀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좀 적게 가진 사람은 자기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자리를 찾아간다.
그게 자기 자리인 줄 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옮겨지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마음이 낮은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 자리를 바꾸어도 괜찮게 여긴다.
그런데 자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방바닥에 놓인 방석처럼 이 사람이 앉을 수도 있고 저 사람이 앉을 수도 있다.
주인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오늘은 내가 앉았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이 앉기도 한다.
가진 것이 부족했을 때, 마음이 낮았을 때, 자신의 자리가 낮은 곳에 있었을 때는 모든 것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귀했다.
하늘의 해를 귀하게 여겨 해님이라 했고 캄캄한 밤을 비춰주는 달빛이 고마워 달님이라 했고 별빛이 고마워 별님이라 했다.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님이 오신다고 좋아했고 한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눈송이를 뿌려주신다고 하였다.
사람도 귀하게 여겨서 누가 집에 찾아온다면 손님이 오신다며 부산을 떨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때에는 이웃도 사촌이라며 귀하게 대했다.
그랬던 우리가 불빛 찬란한 시대를 살다 보니 해도 달도 별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도 살아간다.
비가 오면 질퍽거린다고 하고 눈이 오면 추적거린다며 불편해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걸리적거린다며 문 꼭 걸어 잠근다.
많으면 다 좋은 줄 알았다.
선생님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글씨를 칠판에 쓰시고서는 많을수록 좋다고 가르치셨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내용이니까 그 말이 맞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신 것이 있었다.
많으면 좋지만 그 말이 적다고 해서 안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은 뒤의 내용은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반백의 나이가 되어서야 세상의 이치 하나를 깨달았다.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며 적다고 해서 다 안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살자는 운명론이 아니다.
많으면 많은 대로 좋게 살고 적으면 적은 대로 좋게 살면 된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적게 가지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귀하게 볼 수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세상이다.
나는 매일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100세 가까운 어르신도 만나고 사회에 첫발을 내민 청춘도 만난다.
부자도 만나고 가난한 사람도 만난다.
건강한 사람도 임종을 앞둔 사람도 만난다.
축하해줄 사람을 만나면 나도 기분 좋고 슬픔을 겪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눈물이 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얼굴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모두가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을 때 장모님께서 나에게 매우 귀중한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면서 컸는데 그게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씀이셨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도 좋지만 누리며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런 사람을 만날 때는 이렇게 대하고 저런 사람을 만날 때는 저렇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세상을 딱 둘로 나눠서 이쪽은 좋고 저쪽은 안 좋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좋은 세상이다.
둘이 합쳐져서 하나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