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나에게 살아야 할 사명을 주었다

by 박은석


고려시대 말기에 전주에서 살았던 한 가문이 원치 않게 고향 땅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

아들 중 하나가 전주의 고위 관리들과 심한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새로운 관리가 부임하였다며 이 집안에게 기생 한 명을 보내라고 하였는데 그게 그만 그 청년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그 기생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그 청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관리는 분노했고 그 청년의 집 식구들은 자칫하면 큰 화를 당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오늘날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간다는 것은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무척 큰일이었다.

청년의 집 식구들이 옮겨간 곳은 강원도 삼척이었다.

한반도의 남서쪽에 있는 넓은 평야지대의 전주 땅과 동북쪽에 있는 산지와 바닷가가 만나는 삼척 땅은 환경이 너무나 많이 달랐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겨우 그곳에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전주에서 원수처럼 여겼던 그 관리가 이번에는 삼척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이 청년의 가족은 다시 짐을 챙겨서 아예 한반도의 경계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함경도 원산에서 더 올라간 땅이었다.

그곳은 몽골족이 수시로 침략을 가하던 곳이었다.

그 집안의 사람들은 힘을 모아 몽골에 저항해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몽골에 항복하게 되었다.

몽골은 이 청년이 제법 쓸모 있을 것 같아서 그에게 관직을 하나를 주면서 그 지역을 돌보게 하였다.

고려 사람인데 몽골을 위해서 일하는 매국노 처지가 된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홀몸이 아니라 이미 장성하여 그 집안의 어른이 되었고 수천수만 가정을 이끄는 부족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아버지의 직업은 아들에게로 대물림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들도 몽골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 나가서 몽골을 위해서 싸워야 했다.

그러던 중에 몽골과 고려가 연합하여 일본과 싸우는 일이 있었다.

몽골 복장을 하고 그 전쟁에 참전했던 그에게 고령의 왕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애원했다.

자신들은 고려의 사람이며 억울한 일을 당하여 조상 대대로 살았던 전주를 떠났다고 했다.

겨우 변방에 자리를 잡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몽골에서 협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그 가족을 크게 위로하여 주었고 누명을 벗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고려 변방의 치안 유지가 필요할 때면 그 집안의 식구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이렇게 3대에 걸쳐서 가문의 기틀을 다지고 실력을 키운 이 가문에서 조선의 시조인 이성계가 태어났다.




살면서 억울한 일 한 번 겪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누명을 쓴 채 재산을 잃고 사람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속상하고 자존심 상한다며 스스로 혀를 깨물어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억울해도 살아야 한다.

누명을 쓰고 손해를 입더라도 살아야 한다.

속상하고 자존심 상해도 일단은 살아야 한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에 하늘은 나에게 살아야 할 사명을 주었다.

하늘이 그 사명을 거둘 때까지는 힘써서 살아야 한다.

살다 보면 힘도 생기고 억울한 일을 풀 수도 있고 뜻을 세우고 큰 일을 이룰 수도 있다.

싹도 틔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씨앗을 뿌리면 내 아이들은 새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나무를 보게 되고 숲을 보게 될 것이다.

조상들에게는 고향을 떠나는 피란길이었지만 그 길이 후손들에게는 왕이 되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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