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미완성이고 불완전해서 매력이 있다

by 박은석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고 있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들여다보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못지않게 사람 간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은 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와는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괜히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무슨 원인 때문에 둘이 큰소리를 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상대방을 향해서 “사람이 돼라. 인마! 사람이면 그럴 수 있냐고! 인간도 아니다 이놈아!” 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뭔가 분한 게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너무 논리적이지 않았다.

그가 삿대질하는 상대방은 분명 사람인데, 인간인데 사람이 되라니, 인간이 되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 ‘아,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도리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인가?’라는 마음이 들어 더욱 기분이 상한다.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또 들어왔던 말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 말속에는 아직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사람은 사람인데 아직 사람이 아니라는 어색한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부여되는 존재이면서도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완성된 존재이면서도 아직은 미완성의 불완전한 존재이다.

‘길 위의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린 에릭 호퍼가 이것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는 완전한 개, 완전한 돼지는 있는데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나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소원하지만 한평생 살고 나서도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었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마음속에서 자신을 늘 불완전한 존재라고 알려준다.

자연 만물에서 사람만큼 불완전한 존재는 없다.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자존심 상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완성품이 되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파괴되고 망가지는 수순을 밟는 게 만물의 이치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더 예쁘고 화사하게 만들어보겠다며 붓을 든다면 세계 모든 사람이 말릴 것이다.

<모나리자>는 그 자체가 완성품이어서 손을 대는 순간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사람>이라는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다.

손을 대고 붓칠을 해서 채색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평생 동안 완성을 향해서 도전하고 연구하고 노력할 수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글을 읽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훈련을 하고, 인격 수양을 하는 사람은 더욱 도량을 넓히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렇게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말은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괜찮게 살았겠지만 앞으로 더 잘 살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앞으로는 싹 바꿔서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

사람이 완전하다면 인생을 사는 방법도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전에 선택했던 대로 선택할 수도 있고 이전보다 다른 방식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설령 우리가 선택한 것의 중간 결과가 맘에 안 들더라도 그 나름대로 괜찮다.

아직 중간이고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차피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상태에서는 여기저기에서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구멍이 생기면 그 구멍을 하나씩 땜질하면서 막아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땜질한 것 때문에 더 멋진 작품이 되기도 한다.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것이 사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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