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에나 그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들이다.
갓 결혼한 새색시에게 시어머니가 “우리 집안사람이라면...”이라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을 알려주었다.
학교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이라며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와 규칙들을 알려주었다.
그런 것들이 한 세대 두 세대를 지나면 자연스레 지켜나가야 할 전통이 된다.
만약 그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심한 눈초리를 받는다.
전통은 너무 오래된 것이기에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선뜻 내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렵다.
오래되고 답답해 보여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더 이상 전통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면 그 사회와 조직에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어버렸다고 한다.
꼭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들 중에는 좋은 전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전통도 있다.
악습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나쁜 전통은 차마 입에서 그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눈이 있어도 쳐다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게 한다.
그것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이라고 한다.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처럼 엄청난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나에게 밤에는 휘파람을 불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이제 막 휘파람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휘파람 부는 연습을 많이 해서 멋들어지게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온다나?
어머니는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셨던 분인데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나는 정말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타나든가 도둑이 오는 줄 알았다.
지금도 내 휘파람 소리가 형편없는 이유는 그때 어머니가 한 말 때문이다.
밤에 휘파람을 부는 것은 우리 집에서 금기 사항이었다.
꽤 오랫동안 지켜졌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 내가 밤에 휘파람을 불었는데 그날 밤에 귀신도 안 오고 도둑도 안 왔다.
다른 날과 똑같이 밤이 깊었고 새벽이 왔고 아침이 왔다.
휘파람을 불었다고 해서 우리 집에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밤에 들리는 휘파람 소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머니가 휘파람 소리를 듣기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번 깨어진 금기는 다시 봉합되지 않는다.
깨진 채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전에는 밤에 휘파람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그 후로는 밤의 적막 속에서 잔잔하게 휘파람을 부는 것이 운치 있는 일이 되었다.
내가 휘파람 소리를 더욱 갈고닦았다면 야상곡 몇 곡쯤은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따라 했다면 그게 새로운 전통이 되었을 것이다.
클래식 연주회에 가 보면 청중들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재채기가 나오려는 것도 참아야 한다.
어지간해서는 아이들의 입장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브라보!” 소리도 아무 때나 질러대면 안 된다.
박수도 쳐야 할 때 쳐야 한다.
안 그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혼난다.
그렇게 철저하게 전통과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연주회장이지만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면 청중들이 갑자기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
클래식 연주회의 금기사항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은 그 금기 사항을 깨뜨리고 클래식 연주회 중에도 회중들이 환호하고 박수칠 수 있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우리는 종종 전통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을 금기 사항으로 못 박는다.
하지만 모든 새로운 전통은 오랜 전통의 금기 사항들을 깨뜨리고 나왔다.
"깨진 금기가 전통이 되기도 한다."
++ 2009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라데츠키 행진곡> 연주 실황입니다.
https://youtu.be/zLiLLCMui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