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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1. 2022

마음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라는 책을 읽다가 가슴에 팍 꽂히는 구절이 있었다.

책 제목처럼 어두운 옛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한 내용이었다.

주인공이 어둠 속에서 자기 혼자 주절거리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어느덧 자기 손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에게는 젊은 날 몹시도 힘들었을 때 자신에게 큰 의지가 되어준 누나가 있었다.

사실 누나도 삶이 녹록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재혼한 매형과 함께 이번에는 잘살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은 추격자처럼 쫓아오는지 매형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연이어 여러 해에 걸쳐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누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잘 참아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누나는 조용히 세상을 등졌다.

장례를 다 마치고도 사인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때 주인공이 독백처럼 한마디를 하였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누나는 상심하여 죽었다.

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누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주인공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누나를 죽인 것은 ‘상심(傷心)’이었다.

People die of broken hearts! 마음이 깨지면, 상심하면 죽는다는 게 주인공의 생각이었다.

설마 마음이 좀 상했기로서니 죽기까지야 하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마음 상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별 통보를 받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해 보면 마음 상한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겠지만 잊어버릴 수 있다.

다시 보지 않으면 자연스레 잊힌다.

시간만 조금 지나면 된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가지도 않는다.

마음이 상하는 일은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

믿었는데 배신을 당한다든지 의지했는데 실망만 안겨주었다든지 하는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상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마음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할 것이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갈 텐데 지금보다 더 좋게 변하기보다는 더 안 좋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만으로도 나를 보며 상심할 이유가 충분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게 인생의 한 흐름인 것 같다.

기왕 그렇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람들에게 상심의 강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나를 철석같이 믿었다가는 나에게 배신을 당할 수 있고, 나를 전적으로 의지했다가는 나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그러면 나 때문에 상심할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나는 한갓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면 좀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속에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굉장히 믿을만한 사람이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외쳐대는 것 같다.

나만 믿으라고 나에게 의지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나에게 나만 믿는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큰일이다.

이러다가 그 사람의 마음을 깨뜨리는 날이면 그때 난 죽일 놈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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